손병두 <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

그동안 진통을 거듭하던 노동법개정안이 확정됐다.

정부당국자가 스스로 차선의 것이라고 밝혔듯이 노동법의 균형을
취하려는데 고심한 점은 안정되나 21세기를 바라보는 국가경쟁력제고라는
점에서는 미흡한 점을 떨칠 수 없다.

앞으로 국회는 노동법개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 다음과 같은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노사개혁에 대해 근본적인 시각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왜 이시점에서 노사개혁이 필요하며 앞으로 맞이할 21세기에 선진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사관계틀을 취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선진국의 추세는 오히려 노동관계법을 철폐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노동조건의 문제는 노사간의 개별적인 계약관계로 인식돼고 있으며
노동조합마저도 제3자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노사관계를 시장경제체제내에서 사적인 계약관계로 보아야 앞으로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걸맞는 노사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가간 경제전쟁으로 불리울 만큼 치열한 경쟁력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노사개혁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그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때만 후발개도국으로서의 이점을 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 영국 대처수상의 노동개혁, 뉴질랜드 볼저수상의 개혁 등이 왜
필요했는가를 우리는 미리 알아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현명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노사개혁에 있어서 OECD와 ILO 등에서 권고하는 국제적 기준에
대해서도 그것이 절대적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진국은 높은 근로기준을 채택하는 노사관계로 인해 후진국에
비해 불리한 경쟁여건에 있다고 보고 그들의 기준을 후진국에 적용토록
강요하는 요소가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흔히 노사관계에 있어서 국제적기준의 수용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고
있으나 선진국들의 경우 자신들의 경쟁력요소를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일기준에서 경쟁을 하자는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노조와 같은 권고사항에 대하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언론 등에서 비춰지고 있는 반면에 이미 선진국에서 당연시 되고 관행화되어
더이상 논의대상도 되지않는 사항들.

예컨대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나 무노동 무임금
원칙 또 조합비는 조합원이 직접 내는 문제 등을 국제수준으로 하는 것이
노측의 대단한 양보인 것으로 보도되고 이해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셋째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복수노조허용과 제3자 개입문제에 대해서는
경영계에서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를 경영계의 이기심이나 욕심으로만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기업이 문을 닫고 난 뒤에 무슨 노사관계법이 필요하단 말인가.

지금 기업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노동자와 국민과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외국 제조기업들이 왜 우리나라를 떠나고 있으며
우리 기업들이 영국이나 선진국으로 떠나고 있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영국이 한 직장내 수 개의 노조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망해버린 사례를
보고 있지 않은가.

욕을 얻어 먹고 파업에 직면하면서도 소신껏 밀어붙여 영국병을 치유한
결과 오늘날 한국기업들이 영국으로 몰려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싱가포르 이광요총리가 지난 30여년 가까이 외국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내세운 조건이 무엇이었던가를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에서 상급단체에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3자개입마저 허용할 경우 사업장에는 서로의 영역을 넓히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로 인한 노.노간 갈등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지금 세계는 전국 단위의 노조단체가 오히려 하나로 통합돼 가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고자 하는가.

또한 과거 우리 노조운동내에 이념편향적 성향이 있었던 점도 경영계가
우려하는 요소중 하나다.

노사가 하나로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한 엄청난 국제경쟁의 파고를
노.노간 힘겨루기에 말려들어서 헤쳐나갈지 극히 염려스럽다.

넷째 국회에서 이 법안을 다룸에 있어서 누굴 봐주고 안 봐주고의 문제,
누구의 의견에 치우쳤나 안 치우쳤나의 문제, 또 주고받기식의 해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귀찮은 공이 넘어왔다는 식이 아니고 정말 국가백년대계를 위해서 가야할
길을 선택한다는 사명감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확고한 신념으로 이 법의 보완작업에 임해주길
바란다.

선진국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는 정당들의
뒷받침이 무엇보다도 컸기 때문이다.

지금 정당들의 침묵이 표를 의식한 나머지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주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제 책임있는 정책정당들의 지혜가 모아져 후회없는 노사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랄뿐이다.

이번의 노사개혁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못하느냐를 결정짓는
갈림길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최종안을 내놓았지만 어정쩡한 부문에 대해서는 경쟁력
강화라는 시각에서 다시 보완하고 당정이 합심해 21세기로 넘어가기 전에
진정한 노사개혁의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기 바랄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