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졸들이 보옥을 대옥에게서 떼어내어 다른 지옥으로 데리고 갔다.

보옥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자꾸만 대옥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대옥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그쪽 지옥 풍경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는 무슨 지옥입니까?"

보옥이 귀졸에게 물었다.

"여기는 일생 동안 음행을 일삼던 자들이 고통당하는 지옥이지요.

저기 보세요.

여기 지옥으로 와서도 이승에서 즐기던 쾌락을 맛보려고 몸부림들을
치고 있잖아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안을 수 없고 여자 역시 남자를
안을 수 없지요.

남자가 남자를 안는다든지 여자가 여자를 안는다든지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자기 몸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쾌락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미 지옥의 불길이 남자의 음경과 여자의 음문들을 지지고 태워
버렸으니까요.

그러니 저렇게 이승에서 교합을 하던 흉내나 내는 것이 고작이지요"

보옥이 그 지옥의 광경을 보니,과연 귀졸이 말한 대로 남녀의 무리가
각각 떨어진 채로 여러가지 체위를 구사해가며 성교의 장면을 흉내내고
있었다.

어떤 남자는 두 여자를 한꺼번에 껴안고 교합하는 흉내를 내는지
두 팔을 이상한 형태로 뻗고는 이쪽으로 저쪽으로 엉덩이를 움직거리기도
하였다.

"이 지옥에 진종과 지능이 있을 것 같은데, 한번 만나보게 해주십시오"

귀졸이 보옥의 부탁을 받아들여 보옥을 저쪽 모퉁이로 데리고 갔다.

"아, 진종이"
거기에 이승에서 보옥과 가장 친한 벗으로 지냈던 진종이 옆에 있는
지능을 향해 안타깝게 손을 뻗으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하지만 지능은 닿을 듯 닿을 듯하면서 진종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거리에 있었다.

지능 역시 자신의 욕정을 달랠 길 없어 진종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허리를 비비꼬고 있었다.

"진종이, 나야 나, 보옥이"

"보옥이 네가 웬일이야? 너도 세상을 떠나 여기로 온 거야, 뭐야?"

보옥과 진종은 반가운 나머지 와락 껴안았다.

그때였다.

"불이 몰려온다!"

고함소리와 함께 불길이 사방에서 치솟으며 밀려왔다.

진종은 지능에게로 몰려오는 불길을 자기가 대신 막아내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보옥은 그런 진종의 모습이 안쓰러워 견딜 수 없었다.

지옥의 형벌도 끌 수 없는 정욕의 불길이여.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