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라곤다"사는 1948년 "애스턴 마틴"에 경영권이 넘어가기까지
아름다운 스포츠카를 많이 만들어온 스포츠카 전문 업체였다.

초기의 작품들은 미국에서 이민을 온 "윌버 애덤스 건"이라는 사람에 의해
제작이 됐는데 그는 템즈강변에 자신의 인디언식 고향 이름을 따서 "라곤다"
자동차 회사를 세웠던 것이다.

1920년 그가 죽기 전까지 고품격의 스포츠카가 많이 개발 됐고 사후에는
"프란시스 메트칼페"라는 장군에 의해 라곤다는 재정비 됐다.

그리고 당시 최대 스포츠카 라이벌이었던 "벤틀리"에 대적할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4.5l의 직렬 6기통 엔진의 "M45R"를 개발해 3.5l 엔진의 벤틀리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록 벤틀리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지는 못했지만 월등히 싼 가격으로
벤틀리를 앞섰던 것이다.

벤틀리를 앞서려는 그의 의지는 결국 벤틀리가 롤스로이스에 넘어가는
어려운 경제공황에서도 라곤다사를 굳건히 지켜냈다.

그러나 1935년 라곤다에도 불행은 찾아왔다.

경제 공황에서도 회사를 잘 이끌어왔던 메트칼페가 암으로 쓰러지고
설상가상으로 테스트 운전때 교통사고로 인해 30마일 속도규제가 생기면서
대형 스포츠카 시장은 활기를 잃어버렸다.

이로써 라곤다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알란 굿"이라는 변호사에
의해 겨우 회사 명맥을 잇게 됐다.

다행히도 그는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수한 레이싱 팀을 스카우트하는 수완을 보여 결국 라곤다를 1935년
르망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자동차 경주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롤스로이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차"라는 명성을 뺏어 오고 싶어했다.

이렇게 야심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는 우선 개발 모델의 수를 줄이고 오로지 한 모델에만 전념했다.

엔진은 기존의 엔진을 변형시켜 사용했고 보디 디자인은 "프랭크 필리"가
맡았다.

그리하여 "라곤다 굿"이라는 의미의 "LG45" 계열의 자동차가 개발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발은 당시 롤스로이스에 합병되면서 일선에서 쫓겨난
벤틀리의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가 영입되면서 시작됐다.

그는 라곤다 기술 개발 총 책임자로 영입됐는데 그가 부임하면서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는 활기를 띠게 됐다.

엔진은 그가 개발한 V12 4.5l 신형 엔진을 탑재했다.

보디도 새롭게 디자인돼 1938년 드디어 "라곤다 V12"가 탄생됐다.

세계 2차대전으로 충분한 개발기간을 갖지는 못하였지만 부풀대로 부푼
풍만한 보디는 볼륨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175마력의 벤틀리 V12엔진은 보디에 걸맞게 여유로운 드라이빙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물방울 형상의 에어로 다이내믹 형상을 응용한 매혹적인 보디는 클래식
명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롤스로이스의 화려함과는 다르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일으키는 "라곤다 V12"
는 세계 제일의 클래식 스포츠카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김상권 < 현대자 승용제품개발 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