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정웅 < 대림정보통신 대표이사 >

모든 대기업들이 정보통신업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열기는 M&A(기업 인수-합병)시장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왜 이러한 정보통신업 진출 열풍이 부는 것인가.

그것은 정보통신기술이 갖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은 핵무기와 같이 열이나 빛이나 폭풍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정보화사회 이전에 이룩됐던 것들을 마구 파괴시키고 있다.

그 첫번째 파괴가 신화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미국의 컬럼비아2호가 달의 모습을 우리 안방으로
생중계할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는 옥토끼도 계수나무도 없었다.

이렇게 하여 오랫동안 인류가 간직하고 있던 신화는 무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두번째 파괴는 이데올로기와 권위의 파괴이다.

공산주의라는 폐쇄적 사회가 70년의 실험을 끝내고 무너졌다.

구소련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국민들을 장악할 수 있었는데,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이상 정보가 통치자들만의 전유물일 수 없게 된게 소련
몰락의 근인다.

실제로 헝가리의 민주화가 빨리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활동했던
헝가리 출신의 거부인 조지 소로스가 조국에 많은 팩스를 무상으로 기부한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팩스를 통해 서구 자본주의에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됐던 것이다.

이러한 파괴력 때문에 아직도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팩스 설치가
문제시되고 더구나 인터넷은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때에도 팩스는 큰 위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인터넷 때문에 이 지구상의 어느 국가나 사회도 더이상 폐쇄적일
수 없게 됐다.

정보통신 기술은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를 파괴시켰다.

온라인으로 봉급이 계좌로 입금됨으로써 월급날 월급 봉투를 건네주며
잡아보던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파괴된 것이다.

요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아버지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돈을 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서 제일 어른이 누구냐는 조사를 했더니 어린이들이
"엄마"에다 동그라미를 그렸다고 한다.

아빠도 용돈 커피값 교통비를 엄마에게서 받아가는 것을 보고는 엄마가
돈을 버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또 조직에서는 모든 정보를 조직원이 공유하게 됨으로써 중간관리층의
몰락을 가져왔고 이것은 명예퇴직이라는 사회문제까지 야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정보통신기술은 이데올로기는 물론 조직의 중간관리층 몰락과
가정에서 남편과 아빠의 권위까지도 파괴했다.

세번째의 파괴는 공간과 거리의 파괴이다.

정보통신기술은 한낱 멀리 떨어진 섬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던 호주나
뉴질랜드를 이제는 아주 가깝게, 아니 같은 시간대에 있는 이웃 동네 정도로
생각하게 했었다.

공해없고 영어 사용국 가운데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싼 곳이 호주
뉴질랜드이다.

물론 항공기 발달도 한몫 한 것이 사실이지만 정보통신기술 발전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동시에 작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인터넷과 위성통신은 공간적인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이동사무실(Mobile Office)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했다.

휴대폰과 노트북 PC 한대면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재택
근무까지 가능하게 된 것도 정보통신기술 덕분이다.

공부하기 위해 꼭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진찰받기 위해 먼
종합병원이나 외국 병원에 가지 않고 화상진료나 화상교육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또 물건을 사기 위해서도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지 않고 안방에서 TV를
보며 쇼핑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보통신기술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공간과
거리에 대한 기본개념을 파괴시키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파괴력은 이렇게 엄청나게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그 위력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렇게 소리없이 다가와서 우리의 의식과 사회를 바꾸고 있는 정보통신
기술을 누가 빨리 채택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장비화율을 높여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듯이
정보사회에서는 정보통신기술에 투자, 노동 정보화율을 높임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이 미국에 다시 뒤떨어지게 된 것은 산업사회적
사고에서 제조기술에만 투자를 한 결과 정보화투자에 미국에 뒤떨어진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 국가만이 아니라 기업, 아니 개인에게 있어서도 누가 먼저 정보통신
기술을 잘 쓸 수 있느냐에 따라 더욱 생산성에 차이를 보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불황기에 비용 쥐어짜기에만 급급해서는 도저히 경쟁력을 갖출 수 없고
비용절감과 함께 정보화에 과감히 투자, 정보통신기술로 무장함으로써
정보통신 기술의 파괴력을 이용하는 것이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다.

지금이야말로 다같이 노동정보화율을 높임으로써 경쟁력을 향상시킬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