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말의 게임이자 심리전.

그 묘하고도 묘한 스토리가 이번 주 "별일"이다.


<>.정말 믿을수 없거든

1967년 밀워키오픈 1라운드에서 프로 초년생인 제리 맥기(미국)는 신들린듯
68타를 쳤다.

맥기의 동반자는 당시 한창 잘 나가고 있던 베테랑프로(맥기는 이름을
절대 안 밝혔다)였는데 그는 죽을 쑤며 73타를 기록했다.

라운드후 맥기는 휘파람 불며 연습장으로 갔다.

컨디션이 최고라 연습샷도 기막혔다.

드라이버는 280야드 마크를 훌쩍 훌쩍 넘었고 아이언샷은 오직 핀만을
향해 날았다.

그런데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보니 그날 함께 라운드한 선배프로가
자신의 스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맥기는 "우승을 밥먹듯이 한 저 베테랑도 내 스윙이 꽤 탐나는 모양이구나"
하며 흐뭇한 기분이 됐다.

맥기가 공손히 인사를 하자 그 베테랑이 다가와 말했다.

"오늘 자네 라운드는 정말 멋졌어.

스윙도 역시 좋구만.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있어 이렇게 왔네.

자네같은 그립으로 어떻게 68타를 치는지 정말 믿을수 없거든"

그 베테랑은 그 말만을 하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갑자기 좌향좌 우향우

문제는 그후부터.

맥기는 그때까지 그립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볼을 똑바로 칠수 없었다.

볼은 좌향좌 우향우로 갈라졌다.

생각 안하려고 할수록 머리속은 그립으로만 가득찼고 그런 생각은 침대
에서나 다음날 아침 연습장까지 계속됐다.

2라운드에서 맥기는 3번홀까지 더블보기 2개에 보기 1개를 했다.

반면 그 베테랑은 파플레이를 이어 나갔다.

4번홀에서 맥기는 드디어 눈치챘다.

"저 선배가 날 삭이려고 한마디 한 것이구나" 맥기는 복수를 결심했다.

5번홀에서 시간이 생기자 맥기는 베테랑에게 다가가 "존경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배님!

저는 선배님과 함께 라운드하는게 어릴적 꿈이었는데 이렇게 그 꿈을
이루게 돼 몸둘 바를 모르겠읍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한가지 여쭤봐도 괜찮겠읍니까"

"여부가 있겠나.

뭐든지 물어보게"

그 베테랑은 자신의 작전이 이 풋내기 프로에게 여지없이 먹혀든 것이
너무도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숨을 어떻게 쉬시나요

"어제 지적하신대로 전 제 그립을 선배님 그립과 비슷하게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선배님에 대해 아주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이 한가지 있읍니다.

선배님은 임팩트 순간 숨을 내쉽니까 아니면 들이 쉽니까"

그 베테랑프로는 대답을 못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대답하나.

그후 베테랑프로의 볼은 온 사방으로 흩어졌다.

OB란 OB는 죄다 찾아 들었고 물만 보면 볼에 수영을 시켰다.

18홀이 끝나자 베테랑은 이를 갈며 맥기를 쫓아왔다.

"이 천하의 몹쓸 놈아.

아무리 그렇다고 네가 나한테 그럴수 있냐"

사실 "몹쓸 놈"는 신문적 표현.

실제 사용언어는 최상급의 욕이었다.

하여간에 골프는 "너무 분석해도 마비가 온다"는 얘기.

<김흥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