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피아를 연다] (16) 유강식 <한국전기연구소/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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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전공을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다.
박사학위를 딴 후라면 더욱 그러할 터이다.
한국전기연구소 초전도응용사업연구팀 유강식박사(38)는 그러나 자신의
전공을 버렸다.
그는 한양대(전기공학과)에서 압전.초전센서와 관련한 박사학위를 받고
3년여간의 강사생활 끝에 88년 전기연에 입사했다.
154kv급 극저온저항케이블및 이를 시험할 수 있는 액체질소냉각 극저온
모의송전시스템을 개발해 달라는 주문을 단 1년만에 만족시켰다.
그는 이 과정에서 초전도의 중요성을 들여다 봤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세계는 86년의 고온초전도체 발견을 "제3의 산업혁명"이라 부르며 저만치
앞서갔다.
고온초전도현상의 메커니즘규명, 상온초전도체발견등 두가지 과제가
앞으로의 가장 확실한 노벨상감이라며 뛰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공도 아닌데 할수 있을까" "하더라도 선진각국의 연구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정했다.
"그래 하자.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3류일수 밖에 없다"
모든 일에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혼을 불사르는 군인정신으로 임하라는
부친의 가르침대로라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고른 과제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개발.
지난 89년5월 팀구성을 쇄신하고 밤을 낮삼아 뛰었다.
전공분야가 아닌지라 과제심사위원을 설득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첫번째로 부딪친 난관은 MRI용 초전도마그네트에 필요한 초전도선 제작.
이를 만들 압출기조차 없었다.
부산의 중소기업을 설득해 작업한 끝에 간접압출기를 국내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 압출기로 실험하기 3개월째.
마지막 한번의 실험에서 마침내 제대로된 초전도선이 뽑혀 나왔을 때 그는
처음으로 MRI개발성공을 확신했다.
이후 94년 지금모델의 초전도마그네트를 만들어내 자신감을 더했다.
올 8월까지 4개업체와 힘을 합쳐 68cm 구경에서 2테슬라, 10PPM의 고균등
자장을 발생시킬수 있는 헤드스캔용 MRI시스템을 완성, 현재 최종 영상시험
을 진행중이다.
그는 여력을 모아 2010년까지 8~10테슬라급 고자장 초전도마그네트,
100MW급 초전도발전기등을 개발해 초전도상용화기반을 완벽히 구축한다는
각오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지역에 3만평규모의 "초전도응용연구센터"를 세워 일본의
국제초전도연구센터와 같이 키운다는 계획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초전도기술수준은 선진국의 30~40%선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2005년에는 85%선, 2008년에는 95%선으로 따라잡을수 있을 것입니다"
팀원 모두가 혼을 불사른다는 각오로 무장하고 있는 만큼 선진국기술수준을
따라잡는 시기는 이보다 훨씬 빨라질수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
박사학위를 딴 후라면 더욱 그러할 터이다.
한국전기연구소 초전도응용사업연구팀 유강식박사(38)는 그러나 자신의
전공을 버렸다.
그는 한양대(전기공학과)에서 압전.초전센서와 관련한 박사학위를 받고
3년여간의 강사생활 끝에 88년 전기연에 입사했다.
154kv급 극저온저항케이블및 이를 시험할 수 있는 액체질소냉각 극저온
모의송전시스템을 개발해 달라는 주문을 단 1년만에 만족시켰다.
그는 이 과정에서 초전도의 중요성을 들여다 봤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세계는 86년의 고온초전도체 발견을 "제3의 산업혁명"이라 부르며 저만치
앞서갔다.
고온초전도현상의 메커니즘규명, 상온초전도체발견등 두가지 과제가
앞으로의 가장 확실한 노벨상감이라며 뛰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공도 아닌데 할수 있을까" "하더라도 선진각국의 연구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정했다.
"그래 하자.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3류일수 밖에 없다"
모든 일에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혼을 불사르는 군인정신으로 임하라는
부친의 가르침대로라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고른 과제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개발.
지난 89년5월 팀구성을 쇄신하고 밤을 낮삼아 뛰었다.
전공분야가 아닌지라 과제심사위원을 설득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첫번째로 부딪친 난관은 MRI용 초전도마그네트에 필요한 초전도선 제작.
이를 만들 압출기조차 없었다.
부산의 중소기업을 설득해 작업한 끝에 간접압출기를 국내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 압출기로 실험하기 3개월째.
마지막 한번의 실험에서 마침내 제대로된 초전도선이 뽑혀 나왔을 때 그는
처음으로 MRI개발성공을 확신했다.
이후 94년 지금모델의 초전도마그네트를 만들어내 자신감을 더했다.
올 8월까지 4개업체와 힘을 합쳐 68cm 구경에서 2테슬라, 10PPM의 고균등
자장을 발생시킬수 있는 헤드스캔용 MRI시스템을 완성, 현재 최종 영상시험
을 진행중이다.
그는 여력을 모아 2010년까지 8~10테슬라급 고자장 초전도마그네트,
100MW급 초전도발전기등을 개발해 초전도상용화기반을 완벽히 구축한다는
각오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지역에 3만평규모의 "초전도응용연구센터"를 세워 일본의
국제초전도연구센터와 같이 키운다는 계획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초전도기술수준은 선진국의 30~40%선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2005년에는 85%선, 2008년에는 95%선으로 따라잡을수 있을 것입니다"
팀원 모두가 혼을 불사른다는 각오로 무장하고 있는 만큼 선진국기술수준을
따라잡는 시기는 이보다 훨씬 빨라질수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