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도 보름남짓을 남겨놓고 있다.

새해를 생각해야 할 때다.

앞으로의 1년은 김영삼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크게 벌릴 때가
아니다.

벌려놓았던 일을 잘 마무리하고 벌어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정전반을 고려할 때 할일이 무수히 많겠지만 내년도에 김대통령이 특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세부문이다.

안보 및 남북관계 관리, 대통령선거 관리, 그리고 경제관리다.

가장 중요한 안보 및 남북관계 유지로 전쟁가능성을 극소화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는 신한국당내의 대통령 후보선출 및 차기대통령
선거가 공정하게 이뤄지게 함으로써 민주화를 보다 성숙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는 국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는 분야다.

그래서 경제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올해는 경제면에서 고통스러운 한해였다.

경기정점으로부터 일년내내 곤두박질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가 200억불을 넘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로인해 위기막까지 조성되고 있고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노사양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내년에는 경제가 올해만도 못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경제 상태가 회생불능이라거나 절망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우리경제가 언젠가는 경쟁력을 회복해
불황에서 벗어나리라고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현재의 경제난은 올바른 방향설정과 모든 경제주체들의 땀과 고통, 그리고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년도 경제운용과 관련해서 다음을 참고 했으면 한다.

첫째 성장 물가 국제수지 중 중요도에 따라 분명히 해야 한다.

누가 뭐라해도 물가안정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

민생안정과 사회안정은 물론 우리경제에 체질화된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근본적인 해결책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년도에는 경기부진으로 총수요압력이 높지않아 물가가 급상승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렇다면 물가는 5%를 넘기지 않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경상수지방어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빚을 내어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나이든 세대에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외채가 걱정스럽고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환율절하의 용인 등 경상수지를 축소할 수 있는 방안이 최대한 강구돼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권쪽에서는 성장률에 신경이 쓰일 것이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대폭적인 경상수지적자하에서 성장률이 5%대신 1%포인트가 높은 6%가
된다고 해서 득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경상수지폭을 줄이는 것이 불안감을 줄이고 득표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완전고용 상태에 가까운 2%의 실업률, 우리경제에 낀 거품, 투자의 효율화,
산업구조의 전환 등을 고려할때 감속성장은 필요악이기도 하다.

경제정책의 기조 가운데 하나는 근검.절약하여 저축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유인책을 제공하는 일이 돼야 한다.

이는 물가안정, 경상수지 적자축소, 사회풍기의 건전화, 선거를 앞두고
들뜰 가능성이 있는 사회분위기의 진정 등 일석사조, 일석오조의 긍정적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둘째, 노사관계 관리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통과되든, 통과되지
않든간에 내년 봄의 노사관계는 시끄러울 가능성이 크다.

통과되면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데 따른 진통으로, 통과되지 못하면 다음
개정안을 염두에 둔 기선을 잡기 위한 싸움이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이유가 무엇이든 경쟁력을 잃고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기업의
실상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경제를 살리는 길인지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가급적 노동관계법을 빠른시간내에 결말지어 국민들을 설득하고 국론
분열을 최소화해야 한다.

근로자없는 기업이 존재할 수 없듯이 기업없는 근로조건의 향상도 의미가
없다.

노사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내년도 경제의 진폭의
정도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세째, 집단이기주의를 잘 관리해야 한다.

아파트재건축, 그린벨트완화, 한.양방분쟁 등 선거를 틈타 극심한
집단이기주의의 표출이 예상된다.

이해집단의 압력에 못이겨 원칙을 훼손할 경우, 집단이기주의의 창궐이
예상되고 이는 사회의 불안정을 가중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거해인 내년도 경제관리도 대원칙에서 결코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의 결정이 과연 경제논리에 충실한 것인가.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하고 대답해 보아야 한다.

가능한한 많은 정부기능과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규제혁명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원칙때문이다.

경제운영이 시장경쟁원리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경쟁력 향상의 길은
자꾸만 멀어지고 무한경쟁시대에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