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제운영계획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딱 부러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긴축지향"은 아님은 확연해졌다.

국제수지적자나 물가등에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저성장기조는 택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9일 이환균 재정경제원차관의 입을 빌려 저성장기조로 전환할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배경에는 대통령선거의 해인 내년에 불경기가
심해지고 실업률이 높아져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뜩이나 명예퇴직등으로 분위기가 썰렁한 상황에서 <>소비 억제 <>재정
지출 감소등을 골자로한 긴축정책을 펼 경우 집권여당의 정권재창출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것은 불문가지라는 것이다.

국내 연구기관들의 실증적인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년 국내노동시장에 새로
유입되는 근로자는 대략 연간 40만~50만명.

이같은 숫자의 신규취업자를 수용하려면 경제성장률이 7%이상에 달해야
한다.

따라서 성장률이 이보다 떨어지면 실업률은 높아질수 밖에 없다.

지난 91년 9.1%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이 92년에 5.1%로 급락하자 다음해의
실업률은 2.4%에서 2.8%로 급등했음을 정책당국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

현재의 불황국면을 정면돌파, 경제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5%대의 저성장을
해야 한다는 민간경제학자들의 "고언"과 경상수지적자를 연간 1백30억달러대
로 축소하기 위해 5.5%로 낮춰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진언"이 문전박대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수 있다.

또 정부가 경상수지를 절반으로 줄이라는 김영삼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3분의 1 축소"라는 카드를 제시한 것도 국가경제의 적자여부보다는 일자리
확보가 유권자 개개인들에게는 생존을 좌우하는 관심사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무역외및 이전수지 적자가 내년중 90억달러이상에 달할 것이며
반도체값의 지속적인 하락추세가 무역수지 적자폭 감축을 별로 돕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이같은 결정을 낳게 했다고 볼수 있다.

이같이 정부가 경상수지 적자 해소문제를 일단 후선으로 미룬 만큼 정책
우선순위는 적정성장률 유지와 물가안정에 집중되게 됐다.

이에따라 민간기업의 투자와 수출을 늘리기 위한 일부 부양성 조치도
실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한 무역금융단가 인상및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부활등도 검토될수 있다.

한편 물가안정이야말로 서민들의 표 향배를 좌우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휘발유의 소비자물가지수상 가중치가 내년부터 크게 오르는 것을
감안, 연내 물가억제선 달성이 다소 불투명한데도 이달 중순쯤 휘발유 값을
올리자는 결단을 내린 상태다.

경제도 정치행위의 한 범주이고 보면 "표"를 염두에 두는 것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부처는 적어도 "경제논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힘들더라도 구조조정을 미루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같은 적자가 2~3년만 더 계속되면 한국도 한때의 남미국가들과 같은
위기를 겪게 된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충고를 되새겨 볼 일이다.

< 최승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