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동포작가 김학철씨(80)가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창작과비평사
간)를 펴냈다.

이 작품은 중국에서 반우파투쟁이 한창이던 50년대말 대약진시기를
배경으로 모택동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

65년 완성됐으나 문화대혁명기의 필화사건에 휘말려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발표불허"로 묶여있다.

출판기념회 참석차 방한한 김씨를 10일낮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집필을 끝낸지 31년9개월만에, 그것도 고국에서 책을 내놓게돼
감개무량합니다"

이 작품때문에 반혁명현행범으로 구속돼 67년부터 10년간 옥살이를 한
그는 "소설속에는 봉덕사의 에밀레종처럼 사람 목숨 하나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소 여물에 섞인 콩깻묵을 훔쳐먹다 들켜 혼난 시인 서헌의 사연을
재현했는데 이때문에 합작자로 몰린 그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그만
죽고 말았어요"

소설의 전편은 강제노동수용소 "인민공사"에서 하루동안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모택동 찬양시를 비판한 죄로 수감된 잡지사 편집인과 진실을 쓰자고
호소하다 잡혀온 작가협회 주석, 정치학습뿐만 아니라 악기도 순서대로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가 "계급의 원수"로 몰린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참상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후편은 풀려난 반정부지식인들이 단순직이나 막노동으로 살아가는 모습.

반혁명 전과자로 고통스럽게 지내던 잡지편집인과 작가협회주석이
독재정권에 항거할 것을 결심하고 곧이어 반모택동전단이 뿌려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당시 55만명의 지식인이 숙청당하고 "대약진" "인민공사"로 아사자들이
속출하자 비로소 개인숭배의 미몽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어요.

총살당하는 광경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 몇번이나 결심을 번복했으나
끝내 붓을 들었죠. 양심이 공포심을 이겨낸 것입니다"

함남 원산 태생인 김씨는 보성고보 재학중 중국 상해로 건너가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에 입대, 일본군과 싸웠으며
45년에는 조선독립연맹에 참여하는 등 항일투쟁을 벌였다.

80년 복권된 뒤, 현재는 연길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 항일전투 경험을 담은 장편 "해란강아 말하라"와
"격정시대",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등 4~5편이 국내에 출간돼 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