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일본의 출판계는 30여년전 사망한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회상하고
영웅화하는 책을 경쟁적으로 발행하고 서점 또한 특별코너까지 만들어
20~30여종의 역도산 소개서를 진열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 TV가 전해준 얘기들이다.

역도산이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웅이 된 것은 2차대전 직후인
50년대에서 60년대초였다.

당신 일본은 미국의 원자탄 폭격을 받고 항복하여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그때 미남의 청년장사 역도산이 나타나 일본의 레슬링계를 제패하고 미국
선수들을 불러들여 일본국민들 앞에서 치고 받고 내동댕이쳐 통쾌한 승리를
연거푸 보여주었다.

미국에 패하여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을 대신해서 역도산이
시원하게 복수해 줌으로서 일본인들을 열광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역도산이 한국계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63년 일본의 야쿠자가
역도산을 습격했다.

중상을 입을 역도산은 1주일만에 아까운 나이 39세로 사망했다.

역도산에 관한 얘기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잠재적인 열등감을 들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고대 일본이 야만상태에 있을때 백제의 왕인 등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지식인들이 불교와 한자 그리고 농경 길삼 등을 가르쳤다.

고구려의 담징을 비롯한 우리 화가들이 채색 지묵과 벼루 제조법 등을
가르쳤고 그림을 그려 일본미술의 뿌리가 되었다.

이러한 한일간의 문화적 사제관계는 19세기초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네 우월성을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일본이 세계의 선진국이 되려면 먼저 역도산을 가해한 그런 배타적 열등의식
부터 청산해야 한다.

역도산에 대한 추모분위기가 일본인들에게 문명과 기술을 전해준 한국의
은혜를 떳떳하게 시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