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들이 24시간 영업을 한다"

"편의점들이 제품값을 내려 판다"

"슈퍼마켓이 대형매장에서 박스단위상품을 판매한다"

"백화점이 할인코너를 설치한다"...

유통업계에 "영역파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업태가 상이한 유통업체들끼리 상대방의 영업방식을 채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편의점같은 할인점" "할인점같은 슈퍼마켓" "슈퍼마켓같은 편의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이같은 유통업태간 영역파괴는 유통시장 개방이후 본격화됐다.

할인점 창고형 회원제클럽 등 신업태 유통업체들이 국내에 등장하면서
점포간 판매경쟁이 치열해졌다.

매출이 격감한 유통업체들이 조금이라도 판매를 늘리기 위해 영업시간을
늘리고 값싸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가격경쟁력" "편의성" "고객서비스" 등 여러가지 점포경쟁요소중 한가지만
으로는 더이상 살아남을수 없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유통업태간 영역파괴 경쟁은 지난해 문을 연 킴스클럽이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선언하면서 불이 붙었다.

할인점으로는 후발주자였던 킴스클럽의 어쩔수없는 선택이었다.

하루중 언제라도 물건을 구입할수 있다는 "편의성"을 앞세우고 E마트
프라이스클럽 등과 경쟁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낮시간에 쇼핑할수 없는 맞벌이부부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맞서 프라이스클럽 E마트 등도 연중무휴영업에 돌입했다.

영업시간도 1시간이상 늘렸다.

가격이 싸고 영업시간도 긴 할인점은 가장 경쟁력있는 업태로 부상했다.

할인점에 고객을 빼앗긴 슈퍼마켓이 가격인하경쟁에 뛰어들었다.

LG유통 한화유통 등은 타업체와의 경쟁정도에 따라 점포를 A B C 3등급으로
나누었다.

할인점에 근접해 있는 슈퍼마켓들을 중심으로 박스단위판매를 시작했다.

"가격파괴상품" "원가붕괴상품" 등의 슬로건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정가판매가 원칙인 편의점들도 가격인하경쟁에 휩싸였다.

인기있는 몇개 품목을 중심으로 할인판매에 들어갔다.

일정기간동안의 세일행사도 열었다.

할인점이나 슈퍼마켓에 인접해 있는 편의점일수록 할인판매는 잦아졌다.

백화점들은 지하매장 등에 할인코너나 슈퍼마켓을 설치했다.

롯데백화점은 부산점 지하에 할인매장인 L마트를 열었다.

LG백화점 부천점은 대형슈퍼마켓을 개점했다.

"소매업의 왕좌"라는 백화점도 가격파괴바람을 피할수 없었다.

백화점 슈퍼마켓 편의점과 할인점이 이같은 움직임으로 사업영역에 관한
기존 관념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사가 된다면 상대방영역에 과감히 뛰어든다.

유통업계에 "영역파괴"싸움이 본격화한 것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않다.

일부에서는 "타업태를 모방하기보다는 고유의 경쟁력을 높이는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성배 해태유통 부회장은 "성장사업인 슈퍼마켓의 장점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무차별적인 할인점 따라가기 경향을 비판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성득 상무는 "유통영역파괴현상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나는 자구책"이라며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확보를 위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통업계 영역파괴현상이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게 강상무의 지적이다.

유통시장 개방이후 구조 재편기를 맞고 있는 유통업계가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영역침범경쟁이 지속될 것 같다.

< 현승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