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598) 제12부 낙엽 진 뜨락에 석양빛 비끼고 (94)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희봉은, 진가경이 죽은 직후 혼령이 되어 자기에게 나타나 가씨 가문의
몰락을 예언하며 가씨가문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일러주던 일들을 떠올렸다.
선산 주변의 땅들을 헐값에 사들여 잘 관리하고 있으면 먼훗날 그
땅들로 인해 집안 살림을 꾸려갈만한 이익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경아, 지금까지 집안의 대소사에 쫓기다 보니 네 조언대로 실행할
여유가 없었구나.
아직은 가씨 가문이 몰락해가는 조짐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해서 말이야"
희봉이 얼버무리며 자기를 따라오던 시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진가경도 창백한 얼굴에 형형한 두 눈으로 저녁놀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황량한 주변을 둘러보여 말을 이었다.
"이 대관원 풍경만 보더라도 가문이 몰락하고 있는 조짐을 느낄 수
있잖아요.
돈을 엄청나게 들여 이렇게 큰 집들을 지어놓고 이제는 제대로 감당도
못하잖아요.
대관원으로 성친을 와야 할 귀비 원춘은 이미 죽어 나처럼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말이죠"
"알았어. 지금부터라도 가경의 말대로 선산 주변의 땅들을 사 모아볼게"
"이제는 늦었어요.
앞으로 그만한 돈을 마련하기는 힘들 거예요.
얼마 있지 않아 가씨 가문에 큰 횡래지액이 닥칠 거예요"
진가경의 불길한 예언에 희봉이 정신 번쩍 나 지금 자기가 귀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축사의 주문을 속으로 외면서
진가경을 향해 침을 퇘 뱉었다.
그러자 진가경은 서운한 기색을 역력히 떠올리며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더니 축산 모퉁이를 돌아갔다.
"가경아, 가경아!"
희봉은 진가경이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긴 하였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진가경을 마음 아프게한 것 같아 소리쳐 부르며 뒤따라 가려다가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시녀들이 재잘거리며 추상재 대문을 천천히 들어서다 말고 희봉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우르르 달려왔다.
"아씨, 어쩌다가 넘어지셨어요? 옷도 더러워졌네"
"옷이고 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자"
희봉이 옷을 털며 일어나 다시 대문을 나가려하였다.
"이 선물들은 어떡하고요?"
시녀들이 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를 내밀어 보였다.
"글쎄, 모두들 일찍부터 잠이 들었나봐. 다음에 와서 주지 뭐"
희봉은 거짓말로 둘러대며 허겁지겁 대문을 나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3일자).
몰락을 예언하며 가씨가문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일러주던 일들을 떠올렸다.
선산 주변의 땅들을 헐값에 사들여 잘 관리하고 있으면 먼훗날 그
땅들로 인해 집안 살림을 꾸려갈만한 이익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경아, 지금까지 집안의 대소사에 쫓기다 보니 네 조언대로 실행할
여유가 없었구나.
아직은 가씨 가문이 몰락해가는 조짐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해서 말이야"
희봉이 얼버무리며 자기를 따라오던 시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진가경도 창백한 얼굴에 형형한 두 눈으로 저녁놀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황량한 주변을 둘러보여 말을 이었다.
"이 대관원 풍경만 보더라도 가문이 몰락하고 있는 조짐을 느낄 수
있잖아요.
돈을 엄청나게 들여 이렇게 큰 집들을 지어놓고 이제는 제대로 감당도
못하잖아요.
대관원으로 성친을 와야 할 귀비 원춘은 이미 죽어 나처럼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말이죠"
"알았어. 지금부터라도 가경의 말대로 선산 주변의 땅들을 사 모아볼게"
"이제는 늦었어요.
앞으로 그만한 돈을 마련하기는 힘들 거예요.
얼마 있지 않아 가씨 가문에 큰 횡래지액이 닥칠 거예요"
진가경의 불길한 예언에 희봉이 정신 번쩍 나 지금 자기가 귀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축사의 주문을 속으로 외면서
진가경을 향해 침을 퇘 뱉었다.
그러자 진가경은 서운한 기색을 역력히 떠올리며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더니 축산 모퉁이를 돌아갔다.
"가경아, 가경아!"
희봉은 진가경이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긴 하였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진가경을 마음 아프게한 것 같아 소리쳐 부르며 뒤따라 가려다가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시녀들이 재잘거리며 추상재 대문을 천천히 들어서다 말고 희봉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우르르 달려왔다.
"아씨, 어쩌다가 넘어지셨어요? 옷도 더러워졌네"
"옷이고 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자"
희봉이 옷을 털며 일어나 다시 대문을 나가려하였다.
"이 선물들은 어떡하고요?"
시녀들이 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를 내밀어 보였다.
"글쎄, 모두들 일찍부터 잠이 들었나봐. 다음에 와서 주지 뭐"
희봉은 거짓말로 둘러대며 허겁지겁 대문을 나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