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3.4분기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동향은 올들어
처음으로 소비지출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기간중 소득은 14.1% 증가한데 반해 소비지출은 11.1% 늘어나는데
그쳤다.

외식비나 교양 오락비등 불요불급한 지출이 특히 눈에 띄게 줄어든
때문이었다.

불황의 한파가 가계부에 까지 밀어닥쳐 살림형편도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걱정스런 면이 없지 않으나 그동안의 과소비병폐 등을 생각하면 우선은
반겨야 할 일이다.

국제수지적자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물가불안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절약은 경제회생을 위해 소비자들이 할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하면 건전한 소비풍토가 정착돼가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물론 이르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현재의 경제 상황으로 보아 우리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또 아직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비합리적인 소비행태가
하루속히 시정돼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대형 고가품을 선호하는 소비행태는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

승용차나 가전제품 등은 이제 대형이 아니면 안팔리고 화장품이나
의류는 값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것은 우리사회 만의 기형적 현상이다.

대형 고가품 위주의 소비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낭비가
낭비를 부른다.

예컨대 대형차를 사면 연료도 많이 들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

또한 무분별한 외제선호나 해외여행 등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병폐들이다.

올들어 해외에서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작년의 2배를 훨씬 넘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과소비의 또다른 단면임에 틀림없다.

소비절약의 경제적 효과는 구차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오직 실행하고 실천하는 일이 어려울 뿐이다.

수없이 강조되는 일이지만 소비절약의 생활화를 위해서는 지도층
고소득층의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당 소비금액이 클 뿐아니라 저소득층에 주는 상대적 박탈감 등은
우리경제에 큰 해악으로 작용한다.

과소비에 관한한 정부도 예외일 수는 없다.

국회 예결위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 71조4,006억원은 전년에 비해
13.4%나 늘어난 팽창 예산이다.

물론 꼭 필요한 사업은 세금을 더 거둬서라도 시행해야 되지만 경직성
소모성 경비지출에서 더 줄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한푼이라도 아껴야 할 정부가 연말을 맞아 그동안 쓰지 못한
예산을 한꺼번에 집행하느라 부산을 떠는 각부처의 모습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또 우리 사회의 각종제도나 법규가 낭비를 부추기는 요인은 없는지
끊임없이 챙겨봐야 한다.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누구나 과외비 학원비등 사교육비부담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덜어줄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지혜를 모아야한다.

큰차 타고 외제상표를 뽐내는 과시소비보다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분수에 맞는 합리적 소비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볼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