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5일동안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WTO 각료회의는 당초 우려
했던 것과는 달리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폐막됐다.

그동안 제네바 실무자회의에서 난항을 거듭해온 의제들에 대해 대부분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WTO회원국들이 경쟁만이 아니라 협력관계도 펼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다자간 무역체제의 장래가 그만큼 밝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로서는 이번 WTO각료회의를 통해 상당한 소득을 거뒀다.

이번 각료회의 쟁점중 한국에 가장 민감하게 작용했던 문제, 즉 농업에
관한 독립문안을 선언문에 넣으려는 일부 농산물 수출국들의 시도를 무산
시킨 것도 성과로 꼽힌다.

우리는 성장단계등에 비춰 개도국과 선진국의 중간자적 입장이었던 탓에
이견폭이 큰 일부 의제들은 협의과정에서 우리안대로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조달의 투명성등 뉴이슈들이 앞으로 협상으로까지 진전된다면
우리도 상당한 통상압력을 받게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각료회의는 또 정식의제가 아닌 ITA(정보기술협정)가 일부 국가의
요청에 의해 비공식회의 형식으로 열려 힘을 바탕으로한 강자의 논리가
여전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번 회의결과는 각료선언문에 반영됐다.

우선 농업분야는 농산물 조기개방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우리측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부분이다.

한국 EU 일본등 수입국들의 강력한 대응으로 이번 각료선언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각료선언문 초안에 농업분야 구조개혁 협상을 준비하기 위한 분석및 정보
교환작업을 내년부터 실시한다는 문안을 넣자는 것.

이는 2000년 1월1일 이전까지 실시토록 돼 있는 농산물 추가협상 시기를
앞당겨 시장 추가개방도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수입국들이 반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조달엔 합의가 이루어 졌다.

정부조달행위의 투명성과 관련된 원칙에 대한 다자간 협정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그룹을 설치하는데 동의했다.

특히 연구결과를 토대로 협상에 포함될 적절한 요소를 개발키로 하는등
뉴이슈중에서 가장 진전이 많았다.

정부가 조달입찰을 하면서 돈을 받고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행위등을
막자는 취지여서 앞으로 부패라운드가 본격화될 공산이 크다.

정부조달협정 체결국인 우리로서는 해외조달시장 진출기회나 수주가 확대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통산부는 예상하고 있다.

투자부문에서도 무역과 투자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 즉 투자자유화에 대한
검토를 WTO차원에서 시작하고 이를위해 작업반을 설치키로 합의했다.

투자작업반의 검토결과를 토대로 다자협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길을 마련
했다.

따라서 투자라운드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검토결과가 다자협상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로서는 개도국에 투자할 때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관심을 모았던 핵심노동기준은 정치적 선언 수준의 내용만이 담겨졌다.

그러나 무역과 연계가능한 근거가 마련된 셈이어서 향후 각료회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함께 경쟁정책을 연구하는 작업반 구성에 합의했다.

경쟁정책에 반덤핑조치등 반경쟁적 무역조치가 포함돼야 한다는 한국과
개도국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다자협상으로 진전될 경우 미국 EU등 선진국들의 자의적인 반덤핑조치로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로서는 수출여건이 무척 좋아질 수 있다.

특히 ITA합의는 선진국들이 거둔 큰 성과다.

2000년까지 관세철폐 대상품목을 2백2개로 하되 특정 품목의 경우 2000년
이후까지 철폐기한을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참여국들의 정보기술제품 교역규모가 전체의 90%이상이 되도록 확대키로
했다.

< 싱가포르=박기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