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축하는 시작됐다

1935년 4월의 둘째 일요일 오후.

크레이그 우드 (미국)는 클럽하우스에서 축하 받기에 바빴다.

"대단해, 정말 잘쳤어", "아니 어떻게 저 유명한 보비 존스를 제쳤지",
"마지막 8홀을 남겨 놓고 버디 4개를 잡았다며. 그 정도 치면 우승할만
하지"

크레이그 우드는 제2회 매스터즈골프대회를 4라운드 합계 6언더파
282타로 마쳤다.

아직 몇개조 선수들이 라운드를 진행하고는 있었으나 그의 우승은
아주 확실한 것 같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소년이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사라센이 15번홀에서 2타를 쳤어요.

더블이글 (알바트로스)로 동타란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가운데 기자 한명이 "가서 확인해 보자"며 뛰쳐
나갔다.

<>갬블은 기적이 됐다

진 사라센은 4번의 연습라운드에서 무려 17언더파 271타를 쳤었다.

그러나 연습과 실전은 별개. 사라센은 3라운드까지 선두에 3타
뒤져 있었고 그 차이는 14번홀까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하긴 당시 미골프를 주름잡던 거물들은 모두 부진했다.

월터 헤이건은 5오버파 293타였고 대회장소인 오거스타 내셔널클럽을
만든 보비 존스조차 9오버파 297타로 25위에 그쳤다.

그러나 골프에는 항상 드라머가 있는 법.

사라센의 "기적 같은" 알바트로스는 사실이었다.

오거스타의 15번홀은 465야드의 파5홀로 그린 전면에 폭 15m정도의
연못이 가로막혀 있었다.

투온을 하려면 그 연못을 기막히게 넘겨야 하는 "라스베이거스 홀"인
셈이다.

당시 220야드의 세컨드샷을 남기고 있었던 사라센은 역시 "갬블"을
택했다.

그는 4번우드로 회심의 일타를 쳤다.

한 신문에 묘사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볼은 옅은 물안개를 뚫으며 허공을 갈랐다.

볼은 그린 에이프런에 떨어져 두번 튀었다.

볼은 마치 자석에 끌린 듯 홀컵을 향해 굴렀고 이윽고 떨어졌다"

사라센은 그 한타로 경기를 마친 크레이그 우드와 동타가 됐다.

<>기적 이후의 관리가

교훈 여기까지는 너무도 유명한 얘기.

그러나 교훈은 그후의 "전개"에 있다.

사라센의 알바트로스는 생전 처음.

그 위업을 우승갈림길에서 했으니 본인도 흥분할만도 하고 갤러리들
흥분도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사라센은 냉철했다.

그의 머리속에는 타수계산만이 자리 잡았다.

사라센은 "고요히" 골프를 계속했다.

결과는 남은 3개홀에서 3개의 파.

우승여부는 그 다음날의 36홀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36홀 연장전에서 사라센은 11번째홀부터 34번째홀까지 무려 "24개홀
연속 파"를 기록했다.

그는 15번홀에서 결코 다시 모험하지 않았다.

사라센은 5타차로 우승했다.

그리고 졸지에 패자가 된 크레이그 우드도 6년후인 1941년 매스터즈에서
우승했다.

사라센의 알바트로스는 매스터즈를 순식간에 유명대회로 만들었다.

메이저대회중 가장 역사가 일천한 매스터즈가 오늘날 "메이저중 최고"가
된 것도 "사라센 드라머"로 부터 출발하고 있다.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