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크게 줄고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우리기업들은
고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

우리기업의 시장가치 지표인 주가의 추락과 우리 돈의 주요 대외가치
지표인 미달러환율의 급격한 절하는 이러한 기업의 어려움을 반영한
산물이다.

특히 이러한 주가와 환율의 흐름에는 우리 기업의 어려운 입지가 가까운
미래에도 크게 개선될 수 없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내재돼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올들어 정부당국은 고비용-저효율의 타파와 경쟁력 10% 높이기 기치를
내걸고 금리인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장금리는 작년 말보다 상승 상태에 있다.

회사채 유통수익률(은행보증 3년)과 CD유통수익률(3개월)이 각각 11.65%,
11.88%였던 것이 현재는 각각 12.5%, 13.5%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고금리는 돈의 공급이 부족해서 나타난 현상인가.

일부에서는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돈이 부족해서 고금리가 생긴 것이라면 정부 당국은 손쉽게 금리인하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경제는 돈이 적어서가 아니고 많아서 탈이 되고 있다.

과다한 돈은 인플레와 인플레 기대심리를 자극해 높은 명목금리를
야기한다.

올해 10월말 현재 총통화와 MCT(총통화+은행의 CD 및 금전신탁)는
전년동기보다 각각 18.9%, 21.7% 증가했으며 MCT의 94년도 및 95년도말
증가율은 각각 23.1%, 21.6%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통화증가율이 계속해서 20%를 웃돌게 됨에따라 인플레 기대심리가
생기고 인플레 기대심리는 대출금리를 높이고 있다.

높은 인플레 기대심리가 확산되는 가운데 기업이 어떻게 낮은 이자를
지급하면서 계속 자금을 빌려 쓸 수 있겠는가.

정책당국이 진정 금리의 하향안정화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고금리
현상의 근본요인인 높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통화 및 재정의 긴축기조를 밝히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물론 실행과정에서 기업에 추가적인 어려움과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산고로 이해해야 한다.

특히 연말이 되면서 수출과 자본유입 감소로 해외부문에서의 통화방출이
크게 줄고 있다.

이에따라 통화당국은 통화관리에 보다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해외부문에서 통화방출이 줄어든다고 국내부문에서 이를 보충하는
식으로 통화를 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이러한 통화관리는 향후 고금리를 더욱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우리경제의 통화관리 문제는 오래전부터 고금리 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높은 통화증가율 이면에는 30조원을 웃도는 통화채에 의한 통화환수와
수조원에 달하는 정부부문에서의 환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경제의 경우 필요한 유동성보다 훨씬 많은 돈이
중앙은행을 통해 먼저 방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방출하는 돈(본원통화)의 주된 경로는 해외부문과 한국은행
재할인 창구이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나가는 돈은 대외개방압력과 제도적 장치로 인해
통화당국이 거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일면으로는 통화방출, 다른 일면으로는 통화환수를 하는 행태는
고금리현상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

단순히 생각하면 통화량을 좀 많이 풀었다가 환수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안될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환수 규모가 거액이고 또한 통화 방출부문과 통화 환수부문이
다르고 양 부문간의 연결이 효율적으로 되지 않는 우리의 금융 여건을
고려하면이러한 통화관리 행태가 금리상승 압력에 기여하는 정도는
상당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금리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통화관리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대출에 의한 정책금융을 계속 축소해나가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총액한도제의 도입 및 그 한도의 축소조정 등으로 상당한
개선이 있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금융 축소에 따른 기업의 자금압박은 정부재정, 즉 적극적인
조세정책 재정정책 정부예산 등에 의해 완화될 수 있도록 유도돼야 한다.

또 기존의 통화채 잔고를 가능한 축소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주된 방법으로는 단기 통화채를 장기 재정증권으로 전환하거나 정부의
재정흑자를 통한 자금으로 통화채 퇴장(retire)을 도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경제의 고금리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그 구조의 근본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필요지준율의 인하와 같은 지엽적인 접근으로 금리의 하향 안정화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그동안 높은 필요지준율이 유지됐던 근본적인 이유는 고지준율에
의한 통화증가율의 억제와 인플레와 인플레 기대심리의 억제, 그리고
이에따른 명목금리상승의 억제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