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피고인 무기, 노태우 피고인 징역 17년"

16일 오전 10시45분께 서울고등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는 또다시
역사의 한페이지가 기록되고 있었다.

지난 8월26일 1심선고이후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의 항소심 심리를 마치고 피고인들의 형량을 선고하는 권성
재판장의 얼굴은 상기됐고 카랑카랑했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재판장이 전.노씨에 대해 반란과 내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권력의
상실이 죽음을 의미하는 정치문화로 부터 탈피해야 한다"면서 전씨에 대해
사형을 무기로 감형하자 전씨는 눈을 감고 아랫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재판부를 응시했다.

그는 죽음에서 살아난 세상을 실감하는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전씨는 피고인 16명 전원에 대한 형량이 선고되는 5분여 동안 줄곧 허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전씨는 형량 선고에 앞서 재판장이 40여분간 쟁점에 대한 판단과 형량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몸을 뒤로 젖히고 고개를 곧추 세운채 손으로 입술을
훔치는 등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노씨는 결석 등으로 몸이 안좋은 탓인지 침울한 표정으로 방청석을
둘러보다 전씨의 옆자리에 앉았으나 전씨와 달리 고개를 약간 숙인채 가끔씩
자세를 고쳐 앉는 등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노씨도 징역 17년이 선고된 순간 숙였던 고개를 들어 재판장을 쳐다봤다.

"전두환의 참월하는 뜻을 시종 추수하여 영화를 나누고 그 업을 이었다.

그러나 수창한 자와 추수한 자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을 수 없으므로
피고인 전두환의 책임에서 감일등한다"

노씨는 양형이유가 설명되자 내리 깔았던 시선을 조용히 들어 2인자로서
또다시 감형된 형량을 되새기며 재판장을 바라봤다.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전씨는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노씨의 손을 잡았다.

노씨는 무죄가 선고된 박준병피고인의 어깨와 손을 다독거려 주기도 했다.

입정할 당시의 심각했던 표정의 피고인들은 일제히 미소를 감추지 못한채
서로를 격려했으며 방청석의 지인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법정을 나서는 피고인들의 등뒤로 "이게 무슨
재판이야. 수천명을 죽인 사람에게 무기라니 말이 되느냐"는 고함이
쏟아졌다.

< 이심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