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정기국회 회기 마지막날인 18일 안기부법 처리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반해 국민회의는 결사반대 입장을 재확인, 안기부법 처리를
둘러싸고 신한국당과 국민회의가 정면 충돌위기로 치닫고 있다.

자민련은 정부의 안기부법 개정안에 대해 물리적 저지는 하지 않고 의원들
개개인의 의사에 맡기겠다며 사실상 찬성쪽으로 입장을 정리, 국민회의와
색깔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신한국당은 17일 고위당직자회의를 열고 정보위에서 전문위원 검토보고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안기부법을 변칙 통과시켰다는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일축하고 이번 회기내 처리방침을 재확인했다.

신한국당 서청원 총무는 이날 "안기부법 개정안을 18일 법사위에 넘긴뒤
가장 마지막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총무는 이날 오전 열린 3당 총무회담에서도 이같은 방침을 야당총무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국당의 안기부법 회기내 처리방침에 대해 국민회의는 김대중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간부회의와 의원총회를 열어 강력 저지방침을 결의했다.

김총재는 의원총회에서 "안기부법 개정목적은 대통령선거에 악용하려는 것"
이라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지식인 학생 등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을
공포에 빠뜨려 여당이 원하는 대선으로 몰고가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총재는 "한사람도 뒤로 물러서지 말고 반드시 안기부법 처리의도를 분쇄
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소속의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국민회의는 의총에서 결의문을 채택, "국회 정보위에서의 안기부법 개정안
처리는 절차상 하자를 안고 있으므로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한다"며 우선
정보위에서 재심을 요구하는 한편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결단코 저지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국민회의는 특히 본회의장 투표를 막기 위해 소속의원 전원을 의장석 좌우
통로와 좌우투표함 방어 등 4개 저지조로 편성했다.

박상천 총무는 "안기부법 개정은 민주화에 역행하고 억압적 분위기를 형성해
안기부가 정치권 학원 언론계 등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우려가 있다"며 국회
통과 저지방침을 분명히 했다.

국민회의가 이처럼 안기부법 개정안에 대해 강경방침을 고수하는 것은
개정안 내용뿐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는 등 여론의 지지에도 힘입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자민련은 당의 보수이념과 야권공조라는 두가지 측면을 고려, 안기부법
개정안에 대해 명확한 찬.반입장을 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안기부법 개정은 경찰의 대공수사력 강화라는 전제조건에 맞아야
한다는 것과 의원들의 자유의사에 맡긴다는 입장만 정리해놓고 있다.

사실상 찬성쪽으로 돌아선 셈이다.

자민련은 정부가 내년도 예비비에서 4백50억원을 들여 경찰력을 강화하겠다
는 내용의 "보안역략 강화계획"을 이미 전달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안기부법
개정반대는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정무 총무는 "안기부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기본 방침은 변하지 않았지만
국민회의처럼 실력저지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정보위에서의
변칙처리는 원천적 무효인만큼 이를 재심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총무는 또 "국회법 1백12조에 따라 국민회의와 함께 안기부법 개정안
표결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자는 요구서를 제출한 것은 그대로 유효하다"며
"당론으로 찬.반을 결정하지 않고 의원 개개인에게 이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신한국당은 본회의에서 안기부법을 처리할때 국민회의가 실력저지로 나올
경우 이홍구 대표위원 취임이후 일관되게 지속해온 물리적 충돌반대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여 몸싸움을 벌이며 강행처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요구대로 무기명 비밀투표에 쉽게 응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신한국당 일부 재야출신의원 중에는 안기부법 개정에 반대입장을 보이는
의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신한국당의 이런 사정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경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가 일각에서는 신한국당 서청원 총무가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독대한 이후 자민련이 안기부법 개정에 부드러워진 것처럼 신한국당과
국민회의간 막판 절충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김호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