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나라때 문왕과 무왕을 보필하여 천하를 얻게했던 태공망 여상은
동양 최고의 고전의 하나이다.

병법서인 "육도"를 후세에 남겨 놓았다.

그는 이 책의 전술판인 제4판 호도의 진퇴로에서 무왕에게 한 진언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항복한 적병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은 포로에게도 참혹한 형법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그들에게 인의를 보이고 후한덕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저의 사민에게 "죄는 너희의 군주 한 사람에게 있을뿐"이라고 선전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천하가 지순하게 복종할 것입니다.

(항자물살 득이물육 시지이인의 시지이후덕 영기사민왈 죄재일인
여차칙천하화복)"

이 말은 무왕이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이자 폭군이었던 주를 정벌할때
가져야 할 자세를 일깨워준 태공망의 간언이었지만 시대를 내려 오면서도
치자의변치않는 진리로 자리를 해왔다.

특히 그 구절들 가운데 항자물살 뒷날 항자불살 또는 항자불참으로
바뀌어 뭇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려왔다.

항자란 그 언밀한 뜻을 따져보면 항복을 해 온 사람이다.

전쟁에서 세가 불리해 지거나 막다른 궁지에 몰렸을때 적에게 스스로
투항하는 것이다.

이때의 투항은 다분히 자발적인 의지가 담겨져 있다.

항자는 그런 점에서 전장에서 최선을 다해 저항하다가 사로잡히는
로로와는 구별된다.

포로는 항자에 비해 타의적인 면이 강하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포로는 항자가 아니라 패자라고 해야할 것이다.

중국 고사에는 "패장무언"이라는 말이 있다.

천장에서 패한 장군은 입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패장은 병법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의 장수 한신이 조나라와의 싸움에서 뛰어난 군략가인 이좌거를
포로로 잡은 뒤 이웃나라의 정벌에 그의 지략을 빌려주기를 간청했을때
이를 완고히 거부하면서 한 말이다.

포로의 타의적 성격을 드러내 주는 일화다.

그러데도 한신은 이좌거의 재주가 너무 아까워 그를 죽이지 않고 예우를
해 주자 마침내 승복을 했다.

엊그제 12.12말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의 판결문에 "항장불살"이라는
이색적인 원용고어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그 주인공인 전두환피고인이 그동안 오랜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로
미루어 볼때 항장인지 패장인지 가늠하기 어려움을 떨여 버리지 못하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