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자 <화가 / 고려대 교수>

며칠전 교내 여교수들의 송년모임이 있었다.

5,000원짜리 선물을 준비하되 금액이 초과될 경우는 초과액만큼의
벌금을 낸다는 규칙도 마련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처음에는 5,000원짜리 물건으로 연말선물이
되겠는가.

영수증을 첨부해야 하는가등의 질문도 나왔다.

스케일이 큰 어느교수는 한 2만원정도의 선물을 준비하고 1만5,000원
벌금을 낼수도 있지 그렇게들 융통성이 없어서야 교수밖에 할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하여 한바탕 웃기도 했다.

받아서 기분좋고 주어도 하찮치 않을 5,000원짜리 선물로 어떤것이 있을까
하여 꽤나 신경이 쓰였다.

과천미술관에 갔던 김에 휘어진 철사끝에 메모꽂이 집게가 붙은 작은
조형물을 샀다.

어느 교수의 책상위에서 그날의 긴요한 메모를 물고 서있을 그 공예품
집게를 상상하고 즐거웠지만 너무 조촐해보였다.

그래서 다음주 인사동에 들러 손바닥만한 연잎에 조그만 개구리가
앙징스럽게 앉아있는 도자기 촛대를 9,000원에 샀다.

4,000원의 벌금을 물더라도 받는 이가 즐거워 할 것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모임에 나가보니 4,900원짜리 선물에 100원짜리 동전 한개를 덧붙여
놓았다든가, 정확서성을 기하기위해 5,000원짜리 영수증을 붙이는등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선물교환은 먼저 번호를 추첨하고 번호순으로 골라잡는 식으로 진행됐다.

큼직한 살구씨 크림비누를 받게된 교수는 마침 살구씨비누가 떨어져
사려던 참이었다며 기뻐했다.

정년을 몇년 앞둔분에겐 "정년후의 생활"이란 책이, 연잎과 개구리
촛대는 개구리 악세사리를 수집하는 분에게 뽑혀 포장을 풀을 때마다
즐거운 탄성이 나왔다.

조그마한 향수를 받은 나 역시 기뻤다.

요즈음의 5,000원으로 연말선물을 산다는 것은 보물찾기처럼 어려운
일만 같았다.

그러나 그날의 선물들을 보면 5,000원으로도 보내는 이의 마음을
실을수 있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즐거움과 만족은 비싼물건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