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은 대관원에서 진가경의 귀신을 본 후에 몹시 앓았으나 얼마 후에
회복이 되었는데, 이번에 시아버지 가사가 잡혀가고 그 재산이 몰수당하게
되자 또 병이 도져 자리에 눕고 말았다.

진가경이 대관원 추상재에서 나타나 예언한 그 횡래지액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구나 하고 생각하니,진가경의 혼령이 이전에
예언한 가씨 가문의 몰락도 그대로 이루어지겠구나 싶어 가슴이 떨리고
두근거렸다.

가사의 아내 형부인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몸져 누우니 집안
전체가 큰 시름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집안 사람들이 한사람 한사람 다쓰러지는 것은 아니가.

가정은 하루라도 빨리 가사의 사건에 관하여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려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일단 궁중으로 들어가 추밀원 대신들과 군왕들에게
문안을 드리면서 사태의 추이를 엿보았다.

그런데 북정군왕이 이미 황제께서 가사의 사건을 다시 검토하였다면서
가사에게 될 수 있는 한 관대한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 관대한 처분이라는 것은 감옥에 가두어 옥살이를 시키는 대신 변방
지방 수비대의 일종인 대참에 들어가 복무하도록 함으로써 속죄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변방 지방 벼슬아치로 발령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사의 재산만은 몰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 정도라도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가정은 한숨을 돌리고 집으로 돌아와 병석에 누워 있는 대부인에게
여차여차하여 가사의 일이 잘 풀리게 되었다고 아뢰었다.

가사가 풀려나 식구들과 함께 변방 지방 대참으로 내려갈 채비를
하였다.

재산이 몰수당하고 말았으니 여비조차 제대로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러자 대부인이 아들과 손자, 그 아내들을 불러 앉히고 그 동안 장농과
궤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돈들과 귀중품들을 나눠주었다.

가사에게는 여비로 이천 냥을 주고 천 냥은 가사의 아내 형부인에게
주어 용돈으로 쓰게 하였다.

그런 식으로 대개 삼천 냥씩 집안별로 나눠주었다.

보옥에게도 가정을 통하여 값나가는 금은붙이들을 건네주었다.

결국 대부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죽기 전에 유산들을 자손들에게
나눠준 셈이었다.

가사와 가정을 비롯한 대분인의 자손들은 다같이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감읍하였다.

가사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아뢰었다.

"저희들은 고령이신 어머님께 효도를 하기는 커녕 근심과 걱정만 끼쳐
드렸는데, 어머님께서 오히려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저희들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