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 < 목사 / 극동방송 사장 >

1996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평화와 기쁨과
소망, 무엇보다도 빛이 가득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빛은 어두울수록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땅에 강림하시던 이천년전 유대의 형편은 정말
어두웠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 경제적으로는 끌없는 궁핍, 유대교의 화석화
로 정신적으로도 기댈곳이 없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을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측가는
우렁차게 퍼져 나갔고 그 분의 음성은 보다 빨리, 보다 넓게, 보다 진하게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북쪽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배 세력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경제적인 파탄, 무서운 기근,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 사상의 교조화-소식을 듣기만 해도 숨이 막혀
오는 곳, 정말로 빛이 요청되는 곳입니다.

"주여, 그 곳에!"

성탄절에 이런 기원이 없다면 당신은 진정 이민족의 일원인가, 정상적인
가슴을 소유한 사람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많은 동포들이 그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어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대한 따뜻한 보살핌이 없다면 그들의 육신은 밝은 곳으로
옮겨졌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내면은 여전히 어두울 것입니다.

북쪽은 그렇다치고 우라는 어떻습니까?

남석 안수길선생의 역작 "북간도"의 끝부분에 있는 "북간도는 날로
밝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북간도는 날로 어두어지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일제 통치 후반기 북간도의 형편은 전기가 들어오고 철로가 부설되고 날로
살기 좋아졌지만 민족 정신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퇴색해져 사람들이 청산리
대첩같은 것을 까맣게 망각해 가는 것을 작자는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생활은 한없이 편리해지고 있지만 도덕심이라든가 사랑같이
정작 중요한 부분들은 날로 깜깜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대목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한총련 사건이라든가 이단 종파의 난무등 어둠이 그 영역을
넓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기 때문에 이 성탄절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잦습니다.

"주여 이 곳에도!"

이렇게 말입니다.

빛은 이 땅을 찾아 왔는데 많은 사람이 두꺼운 커튼을 마음에 내리고 그
빛이 비춰드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가운데 하나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있다면 화려한 장식과 선물, 이런 껍데기들 뿐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이 구호는 이런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종은 울려야 종이며 노래는 입밖으로 나와야 노래며 사랑은 실천되어야
사랑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빛으로 오신 그 분을 받아들일때 성탄절은 비로소 온전한
성탄절이 됩니다.

커튼을 열어 젖히시기 바랍니다.

작사.작곡자 불명인 이 노래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세계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빛 내게 비추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

커튼을 젖히고 빛을 받아들일때 그 안이 밝아지고 그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리고 그 눈이 밝아져서 어둠을 피해 이 땅에 와 있는 남한 이주자들
(탈북자들을 뜻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살길을 찾아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 북간도로 갔던 고마운 선조들의 후예인 재중 동포(조선족)
들의 모습이 바로 보일 것입니다.

성탄의 황홀한 밝음이 이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