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606) 제12부 낙엽 진 뜨락에 석양빛 비끼고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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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와 그 식구들이 변방 지방으로 떠나는 날, 영국부와 녕국부 사람들이
그들을 배웅하며 슬피울었다.
보옥과 보채도 배웅하는 사람들 속에 끼여 서서 눈시울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가사와 그 가정은 영국부에서 떨어져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황제 폐하의 사면을 받아 다시 장안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사의 딸 영춘은 이미 손소조라는 사내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에 아버지
가사를 따라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원래 영춘의 친정에 빌붙어 출세를 해볼까 했던 손소조는
장인댁이 몰락하자 영춘을 구박하기 시작하여 영춘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이어졌다.
가정은 형님인 가사가 이어받을 세습직을 대신 이어받게 되어 은근히
기뻤지만 가사가 귀양 비슷한 길을 떠나는 마당에 그런 내색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가정은 자기에게 세습직이 이어지도록 배려해준 황제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 일부와 대관원을 나라에 바치겠다고 하였으나
황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칙서를 내렸다.
보옥은 백부인 가사가 식구들을 데리고 떠나간 후 쓸쓸한 마음을 달랠
겸 하여 이전에 기거하던 대관원을 시녀 습인과 함께 둘러보았다.
보옥이 기거할 당시만 해도 화려했던 대관원이 이제는 돌보는 이 없이
퇴락할 대로 퇴락해 있었다.
겨울철이라서 그렇긴 하지만 꽃나무들이 모조리 말라 있고, 정자들은
낙엽과 먼지들이 쌓여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것이라고는 대관원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대숲과
잡초들 뿐이었다.
대관원에 와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했던 보옥은 오히려 더욱
허전해져 그냥 돌아가버릴까 하다가 이전에 대옥이 기거하던 소상관으로
다가가보았다.
소상관으로 다가가는 보옥의 눈앞에 생전의 갖가지 대옥 모습들이
어른거렸다.
어느새 보옥의 두 눈에는 물기가 배어들었다.
소상관 대문 앞에서 보옥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세요? 소상관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으실래요?"
보옥을 따라오던 습인이 보옥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도 소상관에 누가 살고 있나?"
보옥이 소상관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습인을 돌아보았다.
"누가 살긴요. 대옥 아씨 돌아가신 후로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아니야. 소상관 안에서 누가 울고 있어"
보옥이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상관 대문안으로 한걸음 들어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
그들을 배웅하며 슬피울었다.
보옥과 보채도 배웅하는 사람들 속에 끼여 서서 눈시울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가사와 그 가정은 영국부에서 떨어져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황제 폐하의 사면을 받아 다시 장안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사의 딸 영춘은 이미 손소조라는 사내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에 아버지
가사를 따라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원래 영춘의 친정에 빌붙어 출세를 해볼까 했던 손소조는
장인댁이 몰락하자 영춘을 구박하기 시작하여 영춘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이어졌다.
가정은 형님인 가사가 이어받을 세습직을 대신 이어받게 되어 은근히
기뻤지만 가사가 귀양 비슷한 길을 떠나는 마당에 그런 내색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가정은 자기에게 세습직이 이어지도록 배려해준 황제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 일부와 대관원을 나라에 바치겠다고 하였으나
황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칙서를 내렸다.
보옥은 백부인 가사가 식구들을 데리고 떠나간 후 쓸쓸한 마음을 달랠
겸 하여 이전에 기거하던 대관원을 시녀 습인과 함께 둘러보았다.
보옥이 기거할 당시만 해도 화려했던 대관원이 이제는 돌보는 이 없이
퇴락할 대로 퇴락해 있었다.
겨울철이라서 그렇긴 하지만 꽃나무들이 모조리 말라 있고, 정자들은
낙엽과 먼지들이 쌓여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것이라고는 대관원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대숲과
잡초들 뿐이었다.
대관원에 와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했던 보옥은 오히려 더욱
허전해져 그냥 돌아가버릴까 하다가 이전에 대옥이 기거하던 소상관으로
다가가보았다.
소상관으로 다가가는 보옥의 눈앞에 생전의 갖가지 대옥 모습들이
어른거렸다.
어느새 보옥의 두 눈에는 물기가 배어들었다.
소상관 대문 앞에서 보옥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세요? 소상관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으실래요?"
보옥을 따라오던 습인이 보옥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도 소상관에 누가 살고 있나?"
보옥이 소상관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습인을 돌아보았다.
"누가 살긴요. 대옥 아씨 돌아가신 후로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아니야. 소상관 안에서 누가 울고 있어"
보옥이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상관 대문안으로 한걸음 들어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