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개혁위원회 내에 교섭경험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노동계에 밀리게 돼있습니다"

"복수노조를 무조건 반대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대신 우리나라에만 있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관행을 없애야
합니다"

노개위가 공식 발족하기 직전인 지난 4월30일, 서울 시청앞
프라자호텔에선 아침부터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사관계개혁에 대한 경영계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올들어 처음 열린
경총 주최 30대그룹 노무담당임원회의였다.

30대그룹 노무담당임원들은 실질적인 경영계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국내
노사관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

노사개혁이 재계의 핫이슈로 부상하면서 이들의 위상이 올들어 급부상하고
있다.

"복수노조 시기 상조" "정리해고제 관철" "전임자 임금지급금지"등은
이들의 입을 통해 구체화된 경영계의 주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30대그룹엔 "그룹 노무담당"이 공식적으론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계열사의 노사협상에 "지침"을 내리며 진두 지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노조로부터 "제3자 개입"이란 지적을 받기 때문에
그룹노무담당들은 계열사의 협상에 일절 간여하지 않고 있다.

업무분장도 그래서 대부분 "인사담당"으로 돼있다.

노무담당임원회의가 자주 열리지만 전경련의 기조실장 회의 때완 달리
이들의 명단이 공개되는 일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만큼 이들 가운데 "노자부터"(노무부서에서)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재무나 영업등 전혀 관련없는 부서에서 일하다가 임원이 되면서 처음
노무를 맡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자연히 "노자부터" 시작해 전문성을 키운 사람들이 30대그룹 임원회의에서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다.

현대 홍성원이사 삼성 이상배상무 LG 김영기이사 대우 권오택상무
선경 김대기상무 한화 김문기상무 롯데 김종호전무 풍산 이해혁이사
등이 대표적인 인사.노무통들이다.

최근 (주)코오롱 구미공장 노무담당에서 그룹기조실 인력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윤배이사도 마찬가지다.

반면 노무부서 출신이 아닌 임원들은 노사문제에 관한 그룹 정책을
입안하고 계열사 노사현안을 챙기는 "헤드쿼터"역할을 하는 선에서
드러나지 않게 활동하고 있다.

사람을 대하는게 주 업무인만큼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롯데 김전무는 한국전력에서 노조위원장을 지낸 노동계 출신이고 한화의
김상무는 노동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한화로 자리를 옮겼다.

풍산의 이이사는 더 특이한 케이스.

노동부를 거쳐 자동차노동조합연맹 기획실장을 지냈고 82년 풍산에
인사부장으로 입사했다.

노.사.정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다.

그룹노무담당들이 노동정책과 인력양성등 "큰것"을 챙기는 반면
노사문제로 뛰어다니는 사람은 각사의 노무담당임원들이다.

이들은 운신의 폭이 좁은 그룹의 담당임원들과는 달리 거의 매일같이
노조 및 현장 근로자들과 만난다.

한 그룹의 노사관계는 이들 계열사 노무담당들의 컬러에 의해 좌우될때가
많다.

올들어 노사개혁 논의 과정에서 악화요인이 많이 생겨났지만 지난
94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노사화합 분위기는 이들 현장 노무담당자들이
수년간 음지에서 쏟은 노력의 결과다.

LG전자의 김일성상무 한만진이사, 대우전자의 선종구이사 김명범부장,
현대전자의 김병훈이사 노화욱부장, 기아자동차서비스의 하진규상무 등이
노사화합의 대표적인 선도자들로 꼽힌다.

이들은 더 어려웠던 시절에 노무담당의 직무와 윤리관을 형성해놓은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노무에서 잔뼈가 굵어 최고경영자의 반열에 오른 이휘영LG그룹고문
황창학한진부회장 조규향유공사장 김수길SKC부사장등이 노무담당들이
존경하는 "대부"들이다.

그러나 항상 "노사관계에는 면역이 없다"라는 경험칙을 믿고 있는
노무담당의 특성상 이들의 활동상과 면면은 상당 기간 수면하에 잠겨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