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정말 재수없네", "운이 나빠".

우리 사회에서는 "모씨 수뢰혐의로 구속"이란 대서특필을 보고는
이런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보도한 기자나, 수사를 담당한 관계관도, 사석에서는 "재수없어
걸린 사람"으로 이해한다.

많은 사람중에서 재수없는 사람만 걸린다는 뜻이다.

필자는 여기서, 악질적인 부정(법과 사회적 통념이 다같이 죄악으로
보는 경우)과 재수없어 걸린 부정(법으로는 죄가 되지만 사회적 통념은
있을수 있는 일 정도로 보는 경우)으로 그 유형을 구별하되 후자(재수없어
걸린 부정)만을 논하기로 한다.

그동안 한국병이라는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칼국수를
들며 대통령이 모범을 보여도, 가정의 칼로 목을 쳐도 별소용이 없는것
같다.

전직 대통령과 장관에서 말단에 이르기까지,대기업 총수로부터 중소기업,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무슨 대책이 없을까.

분명히 있다.

무엇인가가.

부정하게 받거나 주거나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우리사회의
구조적모순을 원천적으로 시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업을 하려면 제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고 양심적이라도 세법,
환경법, 건축법, 노동법, 교통법, 무슨 법, 무슨 규정등 어는 법에든,
어느 기관에든 걸리지 않고는 해먹을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들 대다수가
갖는 통념이다.

결국은 "돈"이나, "빽"으로 해결해야지, 정도.성실만을 고집하려면
문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보통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면 걸리지 않고 사업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해나갈수 있도록 법규와 제도와 관행을 고치고
현실화해야 한다.

이 길 뿐이다.

어차피 지켜내기 어려운 법이기에,국민들은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걸리지 않고 빠져나가는 방법" "걸렸을때 수습하는 능력" 이를위해,
평소에 높은 사람.힘있는 사람을 잘 사귀는데 신경쓴다.

예컨대 애경사에는 인산인해로 모인다.

우리의 미풍양속은 "빽"형성의 기회로, 우회적 합법적 뇌물수수의
방편으로 타락하고 만다.

이같이 비뚤어져가고 있는 국민의식,이것은 위와 같은 근본적.구조적
모순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비극적 산물이다.

"나쁜 놈"보다는 "재수없어 걸린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되어 있는 한,
부정의 척결은 백년하청이다.

일벌백계니 엄중처벌이니 하는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솝우화인 바람과 태양의 외투벗기기 시합에서도 결국 강풍이 패하지
않았던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