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모르는 불도저들"

거평 이랜드 나산 신원 새한 동원 아남등 신흥중견그룹들을 지칭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말이다.

올해 이들 중견그룹은 불도저처럼 땅을 고르고 장애물을 밀어붙여
새 길을 닦기에 바쁜 한해를 보냈다.

사실 96년은 반도체수출부진을 시작으로 전 산업계에 불황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한 해였다.

그러나 "해가 지면 별이 뜬다"는 말처럼 이들 중견그룹들은 후퇴를
모르는 공격적 사업전개로 부황속의 신화를 쌓으며 빛을 발했다.

거평그룹의 올해 활약상은 그 대표적이다.

94년 대한중석인수로 기업인수의 재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거평그룹은
지난해 12월 거평파이낸스를 설립한데이어 올들어 강남상호신용금고와
새한종금을 잇따라 인수했다.

금융군을 거느린 명실상부한 그룹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춘셈이다.

거평은 또 올해 거평프레야오픈으로 본격적인 유통사업에 뛰어들면서
그룹 최초로 기업이미지광고를 시작했고 1백신규채용인원도 작년보다
1백50% 늘렸다.

감량경영으로 허덕이는 대부분의 기업들과 반대로 각종 비용과 투자를
늘린 셈이다.

거평은 올해 총매출 1조3천억원(추정), 새한종금인수에 도장을 찍는
내년 1월이면 자산규모가 2조1천6백억원으로 늘어나 30대그룹 대열에
너끈히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류업계의 빅3인 나산 신원 이랜드등도 활발한 사업확대와 비전설정으로
제2의 성장기를 맞고 있다.

나산은 올초 한길종금 인수로 금융업에 처음 진출한데 이어
한길파이낸스를 설립, 금융부문도 보강했다.

지난 10월에는 대주건설을 인수, 계열사를 총 12개로 늘렸다.

신원 역시 올해들어 제일물산공업을 인수하고 광고회사 신원기획와
정보통신회사 신원I&C를 설립했다.

이와함께 나산그룹은 유통을 신원그룹은 정보통신을 각각 21세기
전략사업으로 설정, 의류회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종합대그룹으로
나가겠다는 그룹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랜드도 올해들어 켄싱톤호텔 오픈, 가구사업시작, 카테고리킬러사업
진출, 센토백화점인수등 의류에서 유통및 레저부문으로 변신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새한그룹 동원그룹 세아그룹등이 잇따라 그룹화를 선언하면서
중견그룹대열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사업다각화와 대그룹진영갖추기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전진의 행보를 계속한 이들 중견그룹들은 여러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업계에서는 그 무엇보다 총수들의 탁월한 재테크능력과 경영감각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중견그룹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사업확대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으나 이들 그룹은 <>부동산등 보유자산 활용기
<>업공개 <>건설부문의 분양및 임대등으로 현금조달과 운용에 뛰어났다는
평가다.

최근 명예퇴직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국내유수의 대기업에서 흘러나온
인재들을 대거 영입, 경영인력을 보강한 것도 사업확장의 큰 발판이
됐다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대기업과 다른 슬림한 조직, 의사결제과정의 신속성으로
경제변화에 발빠른 대응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중견그룹들의 눈부신 성장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확대경영이 내실없이 외형적으로만 지나치게 부풀려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어느 한계까지 가면 한꺼번에 거품이 빠져버릴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들 그룹들은 현재까지 대기업을 훨씬 앞지르는 고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탄탄한 자금과 조직관리가 뒷받침된 지속적인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면 다가오는 21세기엔 "중견"의 꼬리를 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권수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