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사건의 해법을 놓고 미국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한국과 북한당국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9~24일까지 2주일여간 무려 여덟차례나 실무접촉을
벌였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결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로선 크리스마스 휴가를 끝낸 26일부터 9차접촉을 계속할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지만 협상이 속개되더라도 연내 타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는게 정부당국자들의 전망이다.

이번 미북 실무접촉을 통한 협상에서 다소나마 진전이 있었다면 북한측이
그동안의 강경자세에서 한발짝 물러나 최소한 "사과할 용의는 있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이번 협상은 북한의 사과를 기정사실화한채 사과의 주체와 대상,
내용의 절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관련, 지난 7차 접촉에서 사과의 주체와 대상등에서는 어느 정도
의견을 접근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나 평양측의 반대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당국자들은 전하고 있다.

이에따라 한미양국은 북한의 태도변화가 전제되지 않는한 더이상 추가접촉
은 무의미하다는 "최후통첩"을 북측에 이미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의 수차례 접촉을 통해 북한측은 사과의 주체와 방법, 내용면에서
다양한 협상용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모두 우리정부가 수용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정부당국자들은
설명한다.

사과의 주체와 대상에서 입장차가 좁혀지면 내용이 미흡하고 내용이
갖추어지더라도 형식이 적절치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북한은 당초 협상주체인 미주국장 이형철 개인명의로 사과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우리정부는 이형철이 책임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북한측은 다시 카드를 바꿔 정무원의 위임을 받아 미주국장
이형철 명의로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을 통해 우리정부측에 전해 왔으나
이 제의 역시 정부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주국장이 사과의 주체가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에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사과하는 형식이 된다는 논리에서다.

현재 우리정부는 사과의 3요소가 모두 갖춰진 "제대로된 사과"만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사과의 주체가 "북한당국"이어야 하고 <>대상은 "우리정부"이며
<>내용은 잠수함 침투사건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사과
문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를 들어 정부 당국자는 미북 실무접촉을 통한 잠수함사건
마무리에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또 협상에 임하고 있는 이형철이 "전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실무
접촉의 실효성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식량난과 내년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공식 권력
승계등 북한 내부사정 때문에 북한이 결국 스스로 굽히고 들어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일단 한미 양측으로서는 잠수함사건에 대해 이미 충분한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기 때문에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리는 입장이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면서 감춰둔 "마지막 카드"를 제시한다면
협상이 급진전될 수도 있다.

반면 북한측이 종전 주장을 꺽지 않으면 결국 협상창구로서의 실무접촉은
무의미해지 때문에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미국측의 중재역할도 협상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이건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