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 몰락, 중소형 재료주 득세"

경기하강기의 주식시장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중소형 재료주의 경우 지난 24일까지 연초보다 1백%이상 오른 종목이 무려
41개(보통주 기준)에 이르른 반면, LG전자 삼성전자 대한항공 현대상선 등
블루칩과 저가대형주의 경우 반토막이 난 종목이 수두룩하다.

시장의 관심사는 이런 이분법적 투자패턴이 언제까지 지속 될 것이냐는 것.

프로 투자자인 기관들도 어느 한쪽에 체중을 싣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쳐두고
있어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중소형 재료주가 외줄타기를 하면서 96년 주식시장을 풍미하게 된
배경에서 실마리를 잡아야 할 것 같다.

중소형 재료주가 상승바람을 타기 시작한 것은 4.11총선 이후.

총선이 끝나자 그동안 억눌렸던 투자심리가 분출되면서 자본금 규모에
상관없이 상승열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시장 체력이 전종목을 끌고 가기에 힘이 부치면서 시장 매기는
상대적으로 몸집이 가벼운 중소형 재료주에 쏠리기 시작했다.

중소형 재료주에 대한 투자기준은 성장성과 자산가치 그리고 M&A(기업인수
합병).

연초에 비해 주가가 6백45%나 오른 선도전기는 매연저감장치 개발, 5백19%가
오른 신광산업은 환경사업 진출, 3백34%가 오른 대성자원은 폐광지역 개발,
3백22%가 오른 영우통상은 한솔그룹으로의 피인수 등을 재료로 시세를 만들어
냈다.

정일공업의 신냉매 개발, 한신기계의 무선 케이블 TV, 한미약품의 항암제,
OB맥주의 지방소주사 주식매집, 태평양종합산업의 보유부동산 가치 같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료주가 시세를 뽑아내다보니 시세를 내는 종목에 억지재료가 붙는 경우
까지 나타났다.

보유 부동산이 별로 없는 회사가 자산주로 분류돼 거품을 형성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한마디로 시장의 자금력이 달리자 유동주식수에 따라 시세가 결정되는
이른바 수급가치가 다른 투자가치를 압도하는 불균형 현상이 빚어졌다.

그런 수급가치에 더욱 위력을 보태준 것이 대형주.중소형 재료주도 몇차례
위기가 있었다.

7~8월께 건설주의 반등시도가 있었으나 그것이 무산됐고, 추석이후 블루칩과
낙폭과대 저가 대형주의 반격이 있었으나 제한적인 반등세에 그치면서 시장
매기는 다시 중소형 재료주에 쏠렸다.

9월부터 허용된 2부종목 신용투자도 기름을 끼얹었다.

시장전체가 휘청거릴 때는 중소형 재료주라고 해서 안전지대가 되지 못했
지만 시장체력의 열세와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시장기류를 비집고 중소형
재료주는 외줄을 타고 산과 강을 건넜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과다하게 걸린 신용융자의 만기일이 내년 1~2월로 가까와지면서
분위기는 약간씩 달라지고 있다.

선발재료주 가운데선 연초시세로 되돌아 간 종목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이달들어 쇠퇴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소형주도 한둘이 아니다.

이 때문에 시장관계자들 사이에선 내년 1~2월을 "시련의 계절"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신용융자물량이 순조롭게 손바뀜을 하지 못할 경우 주식시장이 또다시
휘청거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만 대형주가 추가하락을 멈춰 주식투자에 대한 안정감을 살려줄 경우
중소형 재료주의 추가 연명을 생각해 볼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대형주를 움직이기에는 체력이 달리고 중소형재료주를
계속 밀어붙이기엔 투자위험도가 몹시 높아진 상태다.

당장은 탈출구를 찾기가 마땅찮은 상황이란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
이다.

< 허정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