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4년 8월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태조는 곧 궁궐을 짓는데 착수해
이듬해 준공했다.

이때의 궁궐규모는 3백90여칸밖에 되지 않았다.

근정전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등과 부속건물만이 창건됐다.

궁의 이름은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다" (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이라는 "시경" 주기에
나오는 글귀를 따다가 "경복"이라고 지었다.

정종은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하성으로 옮긴 탓으로 궁은 비어
있었으나 태종이 다시 환도하면서 경복궁은 다시 정궁으로 쓰였다.

경해로를 만들고 아미산을 꾸민 것은 태종때였다.

명종때인 1천5백53년에는 강년전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 전각의 대부분이
소실됐다가 이듬해 북원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선조25년 (1천5백92) 4월 임진왜란으로
한양이 불바다가 됐을 때 경복궁도 전부 회진되고 말았다.

그후 여러차례 재건하려 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궁터만이 2백70여년
동안 남아 있다가 고종이 즉위한뒤 흥선대원군의 집념으로 1865년 재건되기
시작, 3년만인 1867년 옛 위용을 능가하는 대규모의 궁궐로 다시 세워졌다.

그리고 고종이 이 궁으로 이어한지 27년째 되던 1896년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복궁은 다시 주인 잃은 빈 궁궐이 되고 만다.

국권을 잃은 뒤인 1912년부터 일제는 경복궁 근정전 앞에다가 식민통치의
본영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시작해 14년만인 1926년10월에 완공했다.

경복궁은 비록 궁내 대부분의 건물이 없어지기는 했으나 정전 누각 등
주요건물이 남아있다.

1395년에 창건된후 1592년 소실될 때까지 197년동안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중종 명종 선조가 즉위했던 곳으로 조선 정궁의 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정부가 경복궁을 완전히 복원하겠다는 것도 실은 그런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경복궁 구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작업이
얼마전 끝나 문체부가 오는 27일 바로 그 자리에서 일제침략의 상징이었던
건물의 철거를 기념하는 대규모 축제인 대동제를 벌인다고 한다.

우리나라 잔치에 뒷풀이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해도 이런 경제불황속에,
그것도 한겨울에 이처럼 거창한 축제를 벌여야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정작 축제를 열어야할 날은 앞으로 경복궁이 완전히 제모습을 되찾는
날이 아닐까.

또 그날 참석자들에게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도록 철거석 한조각씩을
나눠주겠다는 발상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