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컴퓨터 하드웨어업계는 개인용컴퓨터가 침체의 늪에 빠진 반면
중대형은 활황무드를 타 명암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업체가 주도하고있는 PC시장의 성장세는 주춤해지고 외국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중대형컴퓨터 시장이 확대되는 "외화내빈"의 형국이었다.

정통부는 올해 PC판매량이 1백79만대로 지난해(1백45만대)보다 23.4%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업계는 올해 성장률은 15%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PC시장이 연30%이상의 고도성장세를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불황이었다.

일선영업담당자는 "대기업들이 명예퇴직을 실시하는등 긴축경영에
들어가면서 PC수요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과 가정용 수요가
한꺼번에 위축됐다"고 말했다.

올해 컴퓨터업계의 이슈는 이같은 불황의 늪을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부터 시작된다.

우선 존폐의 기로에 놓인 중소조립업체와 유통업체에서 가격파괴 바람이
불기 시작, 50만원대의 펜티엄급PC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책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싼게 비지떡"이란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결과 국내PC시장 점유율의 30%이상을 차지하던 중소조립업체의 판매비중
이 17.3%로 감소하고 용산 PC유통업체의 부도사태가 속출했다.

올해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LG전자등 대형업체들도 셰어공방을 벌이는 과정
에서 경쟁구도를 완전히 새롭게 짜놓고야 말았다.

LG전자가 한국IBM과 전격 제휴해 LG-IBM을 설립한데다 세진컴퓨터랜드가
거대한 유통망을 바탕으로 저가돌풍을 일으키며 업계 3위로 급부상했다.

이들 업체는 이러한 가운데서도 소비자의 구매욕을 부추길 이슈를 찾아
무던히도 뛰었다.

삼성전자는 문자음성변화시스템(TTS)을 채용한 "말하는 PC"를, 삼보컴퓨터는
3차원영상과 화상회의시스템을, LG전자는 인터넷기능을 강화한 멀티넷을
각각 내놓고 제품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 개발팀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히트작하나 없이 해를 넘기게 된 셈이다.

기술력보다 마케팅력에 의존해온 국내PC업계의 취약점이 다시한번 드러난
꼴이었다.

그러나 노트북 컴퓨터의 경우 "없어서 못팔 정도"로 수요가 몰리면서
초고속 성장세를 이뤘다.

올해 노트북컴퓨터의 내수 판매량을 지난해보다 3배나 많은 18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LG전자가 핸드핼드PC와 네트워크컴퓨터(NC)를 개발하고
삼성전자가 알파칩을 내놓아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에 진출하는등의 기술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중대형 컴퓨터의 경우 올해 매출이 4천5백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0%가량
늘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

업계관계자들은 "국내 기업들이 구조재조정을 거치는 과정이어서 중대형
시스템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는 자동화와 정보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정보서비스업계를 중심으로한 서버의 수요가 늘어난데다 은행이 시스템
교체기에 접어든 것도 중대형시장의 매출을 끌어올리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국산중대형컴퓨터는 정부기관에서 조차 외면받을 정도로
수요가 부진해 주전산기사업에 적신호를 보였다.

내년도 컴퓨터산업의 경기는 올해보다 다소 호전되어 20%안팎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는 새해의 호재로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한 MMX PC와 DVD PC 정도를
꼽고 있다.

새로운 이슈를 못찾고 있는 국내업체들의 모습을 보면 새해도 첨단기능과
디자인의 미국 일본제품과 저가의 대만산에 밀려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지 못하고 안방다툼에 그칠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김수섭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