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한양대 교수 / 경제학>

노동관계법이 26일 새벽 전격적으로 여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입법화됐다.

이러한 국회 처리방식을 놓고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정치권에서의 여야
대치국면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모든 근로자에게 영향을 주는 소득정책을
실시하는 경우 이에 대한 대국민 동의를 구하고 절차상의 모양새 갖추기가
가장 중요시된다.

그런데 이번 노동법은 국민을 상대로 한 설득보다는 노사관계의
3 주체인 노.사.정의 입장을 안배한 절충식 타협안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법의 처리과정에서도 국민일반이나 야당을 상대로 한 설득을
포기한 채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고
이는 향후 우리의 노사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노동관계법 개정과정을 보면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노.사.공익안을
토대로 정부주도의 노사관계추진위원회에서 최종안을 마련했으며, 여당이
입법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 내용을 수정했다.

첫째는 복수노조에 관련된 것으로서 상급단체는 이를 즉시 허용하고
단위사업장에 대해서는 2002년부터 허용한다는 정부안을 상급단체에
대해서는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0년부터 실시하고 단위사업장의
경우는 정부안과 같이 2002년부터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둘째 정리해고제와 관련된 것으로서 정리해고 요건을 "계속되는
경영악화, 생산성향상을 위한 구조조정과 기술혁신 또는 업종전환
등 긴박한 경영상 필요"로 단순화시키고 이에 더해 일정규모이상
해고시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새로운 조항을 신설하여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하였다.

요약하면 사용자측이 반대하는 복수노조에 대해 3년 유예기간을 두었고,
노조측이 반대하는 정리해고제에 대해서는 대량해고시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절충식 수정안을 통과시킨 셈이다.

노사관계 개혁과정에서 나타났던 가장 중요한 관심사항은 노측의
입장에서는 삼금(복수노조 불허용, 제3자개입금지, 정치활동 참여금지)의
허용이었고,사측의 입장에서는 삼제(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의
확보였다고 볼 수 있다.

노측이 불만족스러워 했던 부분은 노조전임자 급여 무노동무임금 등
노조활동 관련 부분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관련 부분이었으며, 사측이
불안해 했던 부분은 무엇보다 복수노조와 제3자 개입의 허용이었다.

정부안을 중심으로 노사간 이해득실을 평가했을 경우 소위 삼제는 현재
노동시장에서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긍정적인 판례가 있었기 때문에 사용자측이 얻는 부분은 별로 크지 않았을
것이며,반면 삼금의 해제로 노측은 전반적인 노동운동의 활성화, 특히
민노총은 이제 불법 혹은 법외노조라는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노측보다는 사측의 불만족과 불안이 더 컸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제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상급단체의 복수노조가 3년간
유예됨에 따라 노동법 개정에 대한 민노총의 불만이 증폭되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장외투쟁이 가열되리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볼 때 복수노조의 허용은 노.노간의 세력다툼을
증폭시켜 중소기업에 어려움을 주고 이들 중 상당수가 하도급 업체임을
감안할 때 모기업의 생산차질과 노사관계 불안이 예상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노동법 개정 이후의 몇가지 과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노측은 고용불안,사측은 노사관계의 악화와 이에 따른 사업장에서의
생산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노사관계개혁에 따르는 노사의 불안심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사를 설득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벨트장치를 시행령 입안과정에서
마련해야 하며, 향후 노사관계 개혁의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이 노출될
경우 이를 신속히 해결하려는 정책의지가 요구된다.

둘째 개정된 노동법은 국가의 경쟁력 강화와 이를 통한 삶의 질
향상보다는 노사간 이해관계의 안배를 기초로 작성된 만큼 노사관계
개혁이 완료된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되며 시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사실상 현재의 노사개혁 내용은 이상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한 선진국가들을
벤치마킹한 것도 아니고,노사관계 개혁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먼저 설정하고 이에 준거하여 명논을 제시하였다기 보다는
한국형 이해당사자(정부포함)의 이익안배식 절충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보다나은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일과성 개혁에 그치지 않도록 이를 수정 보완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셋째 노사관계 제도의 탄력적 운용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최근 유럽 노사관계의 추세는 교섭구조의 분권화 경향,국가경쟁력을
중시하는 협조적 노사관계 그리고 신축적 제도운용으로 특정지어진다.

이러한 선진국의 노사관계 변동추이가 주는 시사점이 제도 운영과정에서
참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노사관계법은 개정되었으나 앞으로 협조적 노사관계 또는 협상
자체를 어용시하는 풍토가 불식되지 않는 한 선진국형 노사관계의 정립은
법 개정이나 제도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새로운 노동법하에서 바람직한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추진하기 위해서
노.사.정은 물론 언론과 국민일반의 의식전환과 무엇보다도 새로운
노동법에 대한 정부의 대국민 설득노력이 중요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