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의 작은 별들에서 초원에 피는 하찮은 야생화들에 이르기가지도
이름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그 이름들을 통해 모든 사물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 사물이 있고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있고 사물이
있다는 역설적인 사상도 생겨난다.

따라서 이름은 어떤 사물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여 다른 것들과
구별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통양에서도 옛부터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중시해 왔다.

"일은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한 다음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온
것도 그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의 상징성을 너무 지나치게 신비화하게 되면 이름의
미신이라는 악습에 빠지게 된다.

예컨데 고대로마인들은 이름이 좋은 사람부터 전쟁터에 내보냈다.

줄리어스 시저 또한 이름을 보고 부하를 발탁했다.

아무런 성공도 없는 스키피오라는 범부가 일약 지휘관의 영광을 차지한
것도 그 이름이 시저의 마음에 들었기 대문이었다.

한국에도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역리에 따라 짓는 작명학이 있어온지
오래되었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일반에게 선호되고 있는 현상이다.

서울시 당국이 이번에 "시청"이라는 이름을 "시민의 전당"으로 바꿀
방침을 정하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고 한다.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지금의 이름을 시민들에게 친밀하게
느껴질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서울이 수도가 된 것은 조선조를 개창한 이성계가 등극한지 3년째인
1384년이었다.

그때의 이름의 한양부였다.

그 이듬해에는 한성부로 개칭되었다.

구한말인 1895년 (고종32)에 한성군으로 격하되었다가 1년만에 다시
한성부로 복원되기도 했다.

1910년 한일합방조약의 체결과 더불어 경성부로 바뀌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서울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서울의 이름은 정권이나 정치체제가 바뀌면서 이처럼 변천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수도로서의 서울이라는 일체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명실상부하게 지방자치정부가 된 서울시 당국이
구태의연한 시청이라는 이름을 떨쳐버리겠다는 그 의도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시정면에서 수많은 난제들을 안고 있는 시 당국이 내실보다는
외화에만 너무 메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는 시민들을 멀어지게 했던 관료주의적 구습을 털어내는데 시정의
우선이 두어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