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이튼날 새벽 여당의 법안 기습처리는 작전상 대승이었다.

연내처리 강행, 개의부터 극한 저지라는 맞받아 치는 여야전략이 포고된
이상 D데이 H아워선택에 허를 찌른 공격측이 승리, 허를 찔린 방어측이
패배함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그것은 나라의 정치논리가 아니라 적끼리 싸우는 전쟁논리상
그렇다.

한국정치의 아마도 영원할지 모를 착각은 바로 전쟁과 정치의 혼동이라고
본다.

온 백성이 둘로 갈려 피를 흘린 6.25경험 때문인가.

이 사회, 특히 반세기 의정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살고
지면 죽는다는 논리로 얼룩졌고 거기서 한발짝도 진전이 없다.

얼마나 바랐던가.

새 국회마다 나아지리라고.

특히 이번 15대에 걸었던 기대는 유난했다.

뭣보다 그리도 자부하던 문민시대 들어 처음 뽑은 국회다.

게다가 어느나라 보다 엄격한 통합선거법 하에 실시된 4.11 첫
총선이었다.

그럴사 하게 절반 가까운 1백39명의 정치 신인들이 원내에 진출했다.

비록 여.야 모두 과반 미달이던 의석을 여대로 바꾸는 과정의 무리로
개원을 한달이상 끌었지만 전문성 연구열 국감태도등을 통해 한껏 청신감을
심어줬다.

국민의 기대는 부풀대로 부풀었었다.

웬걸.정작 멍석이 깔리자 기대는 이내 산산조각 났다.

청신한 신인들의 양심은 당명에 육탄으로 순종하는 단순 로보트기능으로
전락했다.

문민이란 간판은 12.26 사태후 아얘 "독재"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는
지경이 됐다.

그러나 이럴수록 문제의 본질을 혼동해선 안된다.

여당의 변칙처리를 이유로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의 필요성 자체를
깎아 내릴 논리는 성립할수 없다.

오히려 추락하는 기업 경쟁력, 팽창일로의 국제수지 적자, 예측불허의
북한 움직임등 발등에 떨어진 현실을 직시한다면 대응조치에 앞장서서
국민의 불안을 어루만지는 일이 바로 국회의 사명이다.

그럼에도 그 긴 세월을 정치인과 정당들은 자신의 일로 다 허송하고
회기말에. 그것도 법안의 내용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작태를 보였다.

야는 상정부터 막으려 의장단 연금수법을 쓰는가 하면 여는 버도 전례도
없는 새벽 개의,7분간 11안건 통과라는 무리로 대응했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수 있는가.

민노총 산하 수많은 노조들이 사상 초유의 총파업에 돌입하는 이쯤의
사태에서 여야 따라 없이 즉각 수습에 나서야 한다.

잠수함 사건에 사과를 하려던 북한부터 멈칫하며 사태 악용의 틈을
노릴 가능성을 쥐라서 배제하겠는가.

이런 판국이라면 대선 꿈을 꾸는 모든 주자들이 나설 때다.

노측을 설득하고 정부의 현명한 대응을 유도하는 일에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에 앞서면 자격자이고 반대로 이를 기회로 반발을 선동, 점수를
다려하면 대통령 결격자임을 당사자와 국민이 함께 인식해야 한다.

정치가 국리민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뒤쳐져 짐이 되고,엔진이
아니라 브레이크역만 한다면 그런 정치는 볼일 다 봤다.

이제라도 좋으니 15대에 진출한 정치 신인들은 재야 학계 산업현장에서
갈고 닦은 지식 경험, 무엇보다 칼날같은 정의감으로 이 볼품없는 한국
정치의 앞날을 밝혀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