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중인 누에의 집중
진사는 그 집중에서 나온다
그러나 뽕잎을 얹어주고
섶을 깔아줘본 사람은 안다
뽕잎을 갉아먹을 때보다 더 깊은 골몰은
한치의 뒤척임 없는 잠이란 것을,
아랫배 서너 마디로 꼿꼿이 머리 세운 채
안면에 든 누에, 그 적멸에서
진사가 나온다는 것을,
뽕줄기 같은 길과 남루한 지붕 위에
깜깜한 이불을 펴고 있다가
아침, 올이 풀리는 햇살을

시집 "풋사과의 주름살"에서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