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자효씨 (49.SBS해설위원)가 다섯번째 시집 "지금은 슬퍼할 때"
(시와시학사 간)를 펴냈다.

"성 수요일의 저녁" "떠남" 등 맑고 서정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유씨는
이번 시집에서 자연과 우주, 생명의 본질 등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세월의 흐름과 사람사는 세상의 따뜻한 얘기들을 노래한 시도 많이
들어있다.

"너의 노래는 이제/우리의 가슴을 흔들지는 못했다/그러나 너는
열심히 몸을 흔들며 노래 불렀고/젊은 시절의 너에게 박수를 아꼈던
나는/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늙은 가수에게" 부분)

인생의 뒷전으로 밀려난 왕년의 톱가수에게 그가 보내는 갈채는
따뜻하고 또 숙연하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그가
말하는 이유는 오히려 간단하다.

"늙은 가수에게는/늙은 팬의 박수가 필요하므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그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눈길을
끈다.

유년기의 상처와 아픈 기억들을 반추하는 "촛불", 시집가던 날 잠든
동생의 머리맡에 종이돈 몇장을 손수건에 싸 놓아두고 이불을 여며주던
"누나의 손"등에는 "눈물 많았던" 지난날의 추억이 배어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남편과 새치를 뽑아주는 아내의 대화를 담은
"은혼"에서는 사이좋은 중년부부의 모습이 정겹게 묻어난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