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페루 리마에서 지구촌 회의가 열린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2%를 담당하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미래를 논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다. 모처럼 만난 자리다 보니 정상들은 동지국을 찾아 경쟁하듯 양자 회담을 이어간다. 정상회의가 동시다발로 열려 리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회의소가 된 듯하다.필자도 ‘CEO 서밋’ 참석차 리마에 도착했다. 글로벌 기업 경영진이 정상들과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리마로 집결 중이다. JP모간 회장, PwC 회장, 틱톡 최고경영자(CEO), 중국국제무역진흥위원회장 등 셀럽 기업인뿐 아니라 MS, 구글, 엑슨모빌 등의 임원 1000여 명이 자리해 인공지능(AI), 기후 변화, 미래 노동시장 등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불확실성이 짙은 글로벌 경제금융시장에 대한 세계 정상들의 정책 방향과 글로벌 전략을 들으며 혜안을 얻는 자리다.내년 회의는 늦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경주에서 열린다. 경주는 고대 로마의 유리그릇, 그리스 상공인이 만들었음 직한 보검, 서양인스러운 석상이 있을 정도로 글로벌 천년 무역도시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이견을 조율해 통일신라를 엮어낸 지혜도 담고 있는 도시로 지구촌 회의 개최지로 안성맞춤이다.한국 경제사적 의미도 크다. 수출 기반 경제는 국제기구 가입을 계기로 국내 제도와 법령을 선진화해 왔다. 1967년 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에 가입하면서 우리는 최혜국 대우를 받아 공정한 무역 경쟁의 초석을 마련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서비스와 정보기술(IT) 교역 제도가 보완되고 무역분쟁 해결 절차도 얻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법과 제도를 선진국형으
1988년 한국경제신문에 ‘아메리카의 꿈, 재계의 새 우상’이라는 한 인물의 저서가 광고로 소개됐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거래의 기술>이었다. 이 광고에서 ‘미국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받는다’고 언급된 트럼프는 결국 2016년 45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고, 올해 47대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트럼프는 이 책에서 거래를 ‘일종의 예술’로 정의내린다.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끼고,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한다는 게 그의 가치관이다. 수많은 거래 속에서 얻은 삶의 철학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어설픈 성공보다는 빠른 실패가 낫다.” 우크라전 종전 논의 시동트럼프가 내년 1월 취임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거래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일 트럼프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며 우크라이나에서 확전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외교가는 WP 보도가 사실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크렘린궁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일종의 정설이기 때문이다.트럼프는 선거 기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취임 후 24시간 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내년이면 벌써 3년째에 접어든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측은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월 서방 정보기관 등을 인용해 우크라이
“미국인에게 총기류와 총기 로비가 있다면, 독일인에게는 가속 페달과 자동차 로비가 있다.” 독일 경제계에서 회자하는 유머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터져봤자 늘 총기협회의 로비에 가로막히듯, 독일에서 자동차 관련 문제가 발생해도 자동차업계를 흔들지 못한다는 의미다. 자동차가 곧 독일 경제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그 중심엔 폭스바겐그룹이 있다. 디젤 게이트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독일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런 폭스바겐이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세 곳을 폐쇄할 것이란 소식에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디젤 게이트가 도덕적 문제라면, 현재 위기는 구조적이어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얼마 전 독일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쟁력 훼손 요인을 조목조목 열거한 ‘반성문’을 썼다. 핵심은 차이나 리스크와 미래 기술 전환 부진이다.폭스바겐을 도요타와 더불어 세계 자동차 양강으로 키운 건 중국 시장이다. 폭스바겐이 ‘다중(大衆)’이란 브랜드로 세계 자동차 기업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것은 1984년. 그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0달러였다. 당시 유럽에서 자동차 보급률이 가장 낮았던 포르투갈 정도만 돼도 1억3000만 대의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데서 희망을 봤다. 폭스바겐의 장인 정신은 중국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피하느라 경적을 과도하게 울리는 중국에서 차의 내구성을 위해 경적 성능 한도를 종전 5만 번에서 10만 번으로 늘릴 정도로 철저했다.중국 사업 전성기에 폭스바겐은 전 세계 판매량과 영업이익의 4분의 1을 중국 시장에서 거뒀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