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남북관계는 작년의 앙금으로 그다지 밝지 않은 전망속에 시작됐다.

작년에 발생했던 쌀 수송선의 인공기 게양사건과 선원억류사건 등이
우리의 북한 주민에 대한 관심을 급속히 냉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적은 1월25일, 라면 10만개 등을 인도적 차원에서 3차로
북한에 보냈다.

북한은 3월20일 전금철 명의의 팩스로 작년 9월이후 중단됐던 베이징
남북접촉을 재개하자고 제의했다.

우리측은 이에대해 북한측의 대남 비방 중지 등을 선행조건으로 제시했고
북한측은 극도의 긴장조성방법으로 이에 대응했다.

4월4일 북한군 판문점대표부는 비무장지대 및 군사분계선의 관련임무
포기를 선언했고 이에 사흘간 북한군은 3차례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그러나 6월11일 우리정부가 북한측에 3백만달러 규모의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자 북한측의 태도변화로 남북관계는 풀리기 시작했다.

우선 적십자사간의 접촉이 활발해졌다.

7월말에서 8월초에 걸쳐 남북한을 휩쓴 수해로 떠내려온 시신을 서로
돌려주면서 남북한의 연락과 접촉이 빈번해 졌고 남북경협도 정부가 북한
나진.선봉 투자포럼에 기업 및 정부대표단의 참가를 허용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우리 경제인의 방북계획은 결국 북한측이 우리 참가자를 선별 초청해
무산되고 말았지만 북한측 자 서에 따라선 남북경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상황아래 남북관계를 아주 얼어붙게 한것은 9월18일에 발생한 북한
잠수함의 침투사건이다.

남북간의 경협이나 식량지원은 물론이고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도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내부적인 경제위기 그리고 아사직전의 식량사정
등으로 탈북자가 속출하자 마침내 29일 우리측 요구를 받아드려 잠수함
침투사건에 공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에따라 한반도 정새에 짙게드리웠던 먹구름 잠수함.무장공비 국면은
걷혔고 남북관계는 국면전환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새해의 남북관계가 순탄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새해에 김일성 3년상을 탈상하면서 김정일이 국가주석과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할 것이고 이에앞서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라한다.

그러나 이 것은 북한내부의 체제정비에 불과하고 북한의 경제나 식량
위기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결국 북한은 대미.일 접근외교를 강화하면서 우리에게도 식량지원과
경협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이 변경됐다는 징후는 없으므로 우리로선
신중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