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바쳐 미혼모들이 버린 아이들과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돌보는
사람이 있어 경기불황과 노조파업 등으로 가뜩이나 썰렁한 세밑을 훈훈하게
한다.

화제의 주인공은 "양지동산가족"의 어머니인 한종임씨(50).

그는 결혼도 마다하고 독신으로 지난 30여년간을 미혼모들이 버린 아이들을
거둬 친자식처럼 여기고 키워왔다.

이렇게 키워 출가까지 시킨 자녀들이 26명에 이른다.

지금은 49명의 자식과 6명의 할머니를 거느린 대가족의 가장.

형편은 어려운데도 소식을 들은 미혼모들이 이곳을 잇달아 찾아오고 있다.

"낙태를 시키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써보다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이 여기
입니다.

2주일정도 머물다 아이를 낳고 사라지면 다시는 찾아보지도 않지요.

사정은 이해하지만 모정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몇년전부터는 미혼모들이 버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버려진 할머니들도
한식구로 맞아들이고 있다.

"어느날 새벽 문앞에 나가보니 낮선 할머니가 앉아있어요.

어떤 때는 치매에 걸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할머니가 버려져있지요"

이래서 모신 할머니들이 벌써 여섯명이다.

한씨는 대가족을 거느리다보니 하루의 수면시간이 서너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애들 등교준비하고 낮시간에는 생계를 마련하고
할머니들을 돌봐줘야하기 때문에 잠잘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앉은채로 조는 버릇이 생겼을 정도.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께 자식된 도리를 해야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삶인것 같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린지 오래됐습니다"

사실 한씨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안락한 삶을
살아갈 수 있던 신분이었다.

장안의 사람이라면 다 알아주던 구두패션의 대명사격인 칠성제화의 무남
독녀였다.

그러던 그가 미혼모들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63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어린 나이에 억대의 재산을 물려받은 그는 사업을 직원들에게 맡기고 선대
로부터의 자선사업을 담당하기로 한 것.

그러나 남에게 맡긴 사업이 잘 될리 없었다.

재산이 시나브로 줄더니 지난 84년에는 마지막으로 소유했던 유창무역까지
부도가 났다.

그래서 아이들과 오손도손 살던 동대문 4층의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다.

간신히 터를 잡은 곳이 현재 살고있는 상계동 수락산자락의 동막골 비닐
하우스.

막막한 것은 생계문제.

개 닭 오리를 키워 내다판 돈을 수입원으로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며
근근히 이자리에서 십수년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한씨에게 아니 양지가족에게 시련은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한씨가 2년전에 자궁암 선고를 받은 것.

비용이 비싸 항암 치료를 받지도 못해 벌써 죽을 목숨이 기적적으로 살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엎친데덮친 격으로 집터의 주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년 3월까지
땅을 비워줘야할 처지에 놓였다.

한달에 드는 기본 경비만 1천5백만원이 드는 상황에서 땅값 9천만원을
마련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한씨는 가물가물 꺼져가는 삶은 여한이 없으나 거리로 나앉을 가족생각에
가슴이 에일뿐이다.

< 장유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