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감독원이 30일 발표한 "금융실명제 특검결과"는 사정당국에 대한 지나친
눈치보기로 은감원의 검사잣대가 "고무줄잣대"로 전락했음을 보여 준다.

은감원이 주창해온 "은행감독의 투명화"도 "여전히 불투명할 뿐"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이런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은감원의 조치내용이 위규사실에 비해
지나치게 무겁다는 점과 은감원이 두달이 넘게 법석을 떨면서 벌인 특검결과
적발해낸 것이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데서 기인한다.

은감원은 이날 중소기업은행과 국민은행에 대해 "금융실명제 위반및 금융
질서 문란의 정도가 매우 중대하다"는 이유로 "문책기관경고"를 내렸다.

문책기관경고는 "영업정지처분" 다음으로 무거운 조치.

은행들이 실명제 위반혐의로 문책기관경고를 받기는 지난 94년 2월 장영자
사건에 휘말린 서울 동화은행에 이어 두번째다.

지난 95년 비자금사건에 말려든 신한은행도 한단계 낮은 주의적 기관경고를
받는데 그쳤다.

은감원은 "이들 은행이 실명제를 위반한 경우가 많은 것외에도 일선 지점장
이 금융실명제 위반사례가 많은 것으로 얘기해 국민불신을 유발한 것은
장씨사건에 못지 않은 위규"(김상훈 부원장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관계자들은 은감원의 논리는 "비약"이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괘씸죄"가 작용한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국민은행의 경우 실명제 위반정도가 이번에 적발된 제일은행이나
평화은행에 비해 무겁지 않다.

다른게 있다면 한 지점장이 언론기관과의 인터뷰에서 말을 함부로 한 것
뿐이다.

기업은행도 차명예금을 개설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상 거래가 없는
"0원통장"이라는 점에서 역시 "괘씸죄"가 작용한 느낌이 크다.

결국 은감원은 실명제 위반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고 사정당국이 제재를
강하게 원하자 해당은행에 대한 문책을 위해 특검이란 법석을 떨었으며
특검결과가 별볼일없자 혐의사실을 억지로 꽤맞췄다는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이런 식의 감독잣대가 반복된다면 은감원의 권위는 손상을 입을수 밖에
없으며 일선 금융기관만 더욱 위축시킬게 틀림없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