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년 사이에 올해처럼 연초부터 "위기"라는 용어가 실감나게
다가오는 해는 없었다.

어느 쪽을 둘러 보아도 기대어 볼만한 구석이 안보이는 탓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때운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 우리의 현주소는
어느 한구석 미덥지가 않다.

추락하는 새엔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높을수록 반가운 수치는 거꾸러져만 가고 작아야 좋은 수치는 커져만
간다.

성장률 물가 국제수지적자 실업률 외채등 숫자로 표시되는 모든 지표가
한결같이 적색등을 켜고 있다.

방향도 문제지만 나빠져만 가는 속도는 왜 이렇게 가파른지....

올해 그 수치들이 어떻게 갈지는 두번 되뇌일 것도 없다.

저성장 고물가로 대표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이쯤은 이젠 식상한 단어가 돼 버렸다.

단순히 숫자가 나빠지는 정도가 아니다.

여건 자체가 최악이다.

우선은 경제논리로만 보면 악재중의 악재인 선거를 치러야 한다.

가뜩이나 앞날이 보이지 않는 안개정국 속에서 경제만 골탕을 먹고
있는데 내년엔 그안개속에서 불쑥 나타난 괴물들이 마치 공룡시대 처럼
세상을 휘젓게 돼있다.

서로 자기몫을 챙기겠다고 아우성을 쳐대며 민심을 한껏 흐트러뜨릴
것이고 흥청망청 쓸수 밖에 없는 돈들이 시장을 누비는 사이에 경제의
나사가 풀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다 노사관계법 개정에 따른 뒤풀이가 간단치 않을 것 같다.

사정이 안좋으면 노사화합으로라도 비벼야 할 판인데 노사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노노간에까지 으르렁거려야 할 판국이니 걱정이 앞설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남들이 봐줄 것도 아니다.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으니 이젠 선진국노릇을 하라고 온
사방에서 손을 내밀건 뻔하다.

약속해 놓은것 만으로도 주머니가 빠듯한데 이젠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해도 달리 할말이 없게 돼버렸다.

말로만 하던 개방의 파고를 올해는 몸으로 겪어야 한다.

어쩌다 이모양이 돼 버렸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남들 뛸 때 놀고 있었던 탓이다.

정부는 그렇게까지는 망하지 않는다며 장밋빛 청사진으로 상황을
호도했다.

적정성장이 가능하고 적자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장담을 했다.

사정이 급박해졌을 때도 이정도는 견딜수 있다며 진통제로 일관했다.

치료해야할 시기를 놓쳤으니 허겁지겁 내놓은 처방이 약효를 낼리
만무다.

한마디로 정책실기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관치경제의 향수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규제를 즐기고 있으니
경쟁력이 높아질 턱이 없다.

기업도 큰 칭찬은 못듣게 돼있다.

분규를 피하기 위해 편법적으로 올려준 임금이 오늘 가격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자리잡고 있다.

재무구조를 개선할 생각은 않고 남의돈으로 살아온 체질을 벗어던지지
못해 이제 금융비용 부담이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는 형국이 돼 버렸다.

이만하면 살만하다며 즐기는 일 찾기에 골몰했던 근로자, 생기는대로
써버린 주부.

모두가 한국경제호를 암초쪽으로 몰고간 공범들이다.

이제 다시 뛰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다시 일어설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도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반성해 잘못된 일을 뒤집으면 된다.

바로 "발상의 전환"이다.

정부는 만사 다 제치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

무엇이든 다 할수 있다는 사고는 이젠 성장과 발전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기업이 새 사업을 하든, 해외로 나가든, 돈을 빌려오든, 할수 있는
일이라면 보다 쉽게 할수 있게 해주면 그 뿐이다.

그리고 일단 결정된 정책은 정치권의 외압에 밀리지않는 근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기업에 보여주는 그 자신감과 당당함을 정치권에도 보여 주라는 얘기다.

창업세대에서 한세대를 넘기고 있는 재계도 그에 걸맞게 환골탈태 해야
한다.

친분과 로비가 흥망을 좌우하던 시대는 끝났다.

말그대로 피터지는 전쟁일 뿐이다.

"재벌"이라는 단어가 주는 나쁜 이미지를 해소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번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다시 받아야 한다.

명분만 따지는 노조운동, 절약 보다는 소비에 익숙해 있는 주부들.

모두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각오로 1백80도 발상을 바꿀 때다.

올해가 그 전환의 첫해가 되지못하면 21세기에 우리는 구경꾼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라는 각오를 다질 순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