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이란 예로부터 민간에 전승돼 온 풍속 제도 습관 신앙 등을 조사
기록해 민족의 전통적 문화를 구명하는 학문을 이른다.

그 연원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19세기 들어 본격적
연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826년 프랑스학술원 회원인 와크네가 민담과 우화의 기원에 관한 책을
출판했고 독일에선 그림형제가 민담집을 냈다.

민속학이란 용어는 1846년 영국의 톰스가 "아세늄"이란 주간지에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그런데 영국의 민속학은 주로 저급 문화민족이나 서민속에 전래된 설화
가요 속담 신앙 습관 등을 연구대상으로 삼은데 비해 독일계는 민족의
단합이나 통일을 중시해 생활 제도 풍속 신앙 등 민족정신을 추출해낼 수
있는 전반적 분야를 대상으로 삼았었다.

우리 민속학의 성격은 영국보다 독일계에 가깝다고 할수 있으나
현대민속학의 개념이 광범위해졌으므로 앞으로 민족학의 단계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체부가 "문화유산의 해"인 정축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석남 송석하
(1904~1948)를 선정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석남은 고종때 시종부경을 지낸 송태관과 경주 최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2년 부산 제2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상과 대학으로
유학갔었으나 다음해에 동지진이 일어나 귀국했고 그후부터 민속에 관심을
가져 현지조사에 나섰다.

1932년 4월 그가 중심이 돼 손진태 정인섭등과 함께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했고 33년 1월엔 사재를 기울여 학회지 "조선민속"을 창간했다.

또 34년 5월 진단학회와 45년 9월 조선산악회를 창립해 조사연구활동을
뒷받침했고 같은해 11월엔 국립민속박물관의 모체인 국립민속박물관을
설립해 관장으로 취임했다.

민속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자격을 갖추려면 첫째 민속학의 특징인 현지
조사 연구가 행해져야 하고 둘째 민속박물관이 있어야 하며 셋쩌 학회의
조직과 활동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체계적인 개설서나 사전을 갖춘다면 학문적기초는 잡은 셈이다.

송석하는 위의 세가지조건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공험을 했다.

그는 많은 민속품을 수집했고 특히 가면을 많이 수집했었다.

또 만년엔 서지수집에도 힘을 기울여 "삼국유사"권1과 친사본으로
추정되는 "매월당시집"등 희귀본을 많이 모았다.

그러나 그는 학문에 몰두하는 선비형이라기보다 민속문화의 보존과
보급 등에 노력과 자질을 발휘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