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윤 전 서울대교수는 학문의 길을 외곬으로 걸어온 분이다.

그가 교수시절에 보여준 강직한 성품과 소신있는 행동은 지금도 학문의
길은 물론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과거 수차례 입각요청을 받았지만 모름지기 상아탑을 지켜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울상대에서 처음 강의할때 끝까지 강단을 지키겠다는 자기와의 약속
때문에 입각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사회현실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지난 80년초 ''서울의 봄''이 왔을때는 서울대교수협의회장을 맡아 민주화에
앞장섰고, 89년에는 경실련 공동대표로 시민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92년 서울대교수를 정년퇴직하고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서울 강남에
서울사회경제연구소를 설립, 학문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변교수를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

[ 만난 사람 = 김형수 정치부장 ]

-올해 고희이신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 변교수 =지난 80년 서울대교수에서 해직된뒤 해직된 교수 문인
언론인들과 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등산을 하게 됐죠.

낚시도 다녀봤는데 눈이 나빠 안되겠더군요.

그후 등산을 계속 하고 있는데 요즘도 1주일에 한번씩 서울근교 산에
갑니다.

-노동관계법 개정을 둘러싸고 노사간 갈등이 빚어지는등 사회가 어수선한
분위기 입니다.

지난해 경제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원로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올해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변교수 =더 어려워질 겁니다.

고비용구조를 개선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수출도 단기간내에 회복
되기는 어려워요.

불경기는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보면 항상 들떠 있은 다음에 옵니다.

불경기를 거칠때마다 기업이나 가계가 바람을 빼야지요.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구책을 만들어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변교수 =어떤 한가지 방법만 가지고는 안될 겁니다.

관련된 방법들을 한데 묶어 동시에 추진해야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금융실명제도 여러가지가 함께 갖춰진 상태에서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현재 고비용 저효율구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너무 고비용구조만 따져서는
안됩니다.

임금도 물가가 안정돼야 안정되지요.

또 금리는 증시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야 상승을 막을수 있어요.

기업의 직접자금조달수단인 증시가 저 모양인데 간접조달수단인 차입금
금리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요.

고금리, 고지가, 고임금, 고물류비용등은 10년전부터 누적된 결과들입니다.

현재로서는 장기과제인 고비용구조를 일단 접어두고 저효율구조를 바꾸는데
먼저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기업의 몫입니다.

기업들이 기술개발등을 통해 저효율타파에 앞장서야 합니다.

먼저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그 다음에 고비용구조를
논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비용구조만 얘기하고 있어요.

고비용구조는 단기간에 해결이 안됩니다.

-많은 경제학계의 원로들이 정부요직에 진출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
왔습니다.

선생님도 입각요청을 수차례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각하지 않으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변교수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하고의 약속 때문이지요.

55년 서울대상대 강사를 처음 시작할때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강단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자신과 약속했었습니다.

정부에서 맡으라고 하는대로 했으면 장관이나 국회의원도 아마 몇번은
했을 겁니다.

-민간단체이기는 하지만 경실련에 참여하신 것을 현실참여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 변교수 =경실련을 추진하고 있던 제자들이 경제정의실천을 위한 시민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서 부탁을 해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경제학을 하면서 줄곧 성장보다는 분배정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점도 청탁을 뿌리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봐야죠.

그러나 이것은 글을 통해 자기주장을 펴는 행위와 일맥상통한다고 봤습니다.

-그래도 경제학은 사회과학인데 학문을 현실에 적용해보고 싶은 욕구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 변교수 =자기가 찾아낸 이론이나 학설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볼수는 없지요.

그러나 관료조직에 혼자 덜렁 들어가면 아무것도 할수 없어요.

들어가려면 경제팀을 조직해 들어가야죠.이미 짜여진 틀에 혼자 들어가
뭘 하겠다는 겁니까.

아무것도 못해요.

그리고 자기주장을 현실에 적용하는게 꼭 정부에 들어가는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예요.

잡지나 논문등을 통해 자기주장을 펴는 것도 간접적인 참여방식이지요.

정부가 그같은 주장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최근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야는 어떤 것입니까.

<> 변교수 ="마셜경제학의 진화론적 기초"라는 글을 완성시키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은 진화론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또 요즘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왕성하고 외국인투자도 많아 다국적기업에
대한 연구를 다시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흔히 21세기는 정보화시대라고 합니다.

경제학의 패러다임도 바뀌지 않을까요.

<> 변교수 =단시일내에 패러다임이 바뀌기는 어려울 겁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지요.

수학의 원리라든가 공리같은 것도 몇개 안됩니다.

갈브레이스는 최근 브리태니카서문에서 정보혁명 정보고속도로등은 하나의
전달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어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것인데 역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년퇴직하신후 특별한 계획이라도 세운게 있습니까.

<> 변교수 =저는 새해가 돼도 특별히 계획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그저 연속적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퇴임후 외국에서 발표요청이 있어 4~5편 영문으로 발표한게 있고, "한국
경제론"도 일부 수정했지요.

"마셜경제학"은 계속 연구하고 있는데 1년정도 더 걸려야 책이 나올것
같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