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인화씨 (31.이화여대 교수)는 요즘 연구실에서 먹고 잔다.

올해 펴낼 장편소설 2편의 마무리에 눈코뜰 새 없는데다 논술시험
채점과 새학기 문예창작론 강의준비까지 겹쳐 집에 들어갈 엄두를 못내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실 구석의 소형 냉장고에서 냄비우동이나 냉동자장면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서 원고를 쓰고 새벽에는 소파에서 새우잠을
잔다.

"이달 중순에 1주일 정도 몽골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니 벌써부터 오한이 들 정도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보충 취재가 필요해요"

지난해 여름 보름동안 초원지대를 다녀온 그는 "이번에는 울란바토르에서
문헌자료를 집중적으로 찾아볼 생각"이라며 "역사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수많은 인물들이 나를 부르는 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원의 향기" (전 2권)와 "인간의 길" (전 2권) 등 장편소설
2편을 펴낼 계획이다.

지난해 신문연재를 서둘러 끝낸 "초원의 향기"는 반권분량을 더 쓰고
서술방식도 바꿔 전면 개작할 생각이다.

7세기말 당나라의 고구려유민들이 유목생활로 내몰리게 된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시점을 연재때와 달리 1인칭 화자중심으로 바꿔 내면고백체로
꾸미게 된다.

돌궐황제의 사위로 들어가 초원에 고구려 유민국가를 세운 고문간이
주인공.

그는 몽골과 돌궐제국에 관심을 쏟는 것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그곳에서
확인할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1세기 경제대국을 꿈꾸는 중국인들은 중화사상에 심취한 대국주의자죠.

손문조차도 "청나라 대외정책의 최대 과오는 속국인 조선을 잃은 것"
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역사적으로 우리가 속국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려면 주권국가론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없어요.

문화 자체가 다르다는 걸 입증해야 합니다"

고구려와 북방기마민족간의 "피의 유대"를 밝혀 한족들의 전제문화와
뿌리가 다르다는 걸 확인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자유사상에 토대한 기마민족의 유목문화는 중국의 전제적인 군주문화와
완연히 차별된다는 것.

"언어사용 인구로 볼 때 한국어는 세계 10위죠.

이처럼 독창적인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는데도 중국은 틈만 나면
속국론을 들고 나와요.

우리언어와 문화가 한족과 근본적으로 다른 알타이어 계통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초원의 향기"를 쓰게 됐죠"

또하나의 장편 "인간의 길"은 계간지에 연재했던 것으로 1871~1961년
허씨 3대의 가족사를 다룬 것.

주인공 허정훈은 처음엔 평범한 인물이었다가 역사의 회오리를 겪으며
차츰 모난 인간으로 변한다.

어떤 체제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영원한 모반자"를 통해 인간과 신의
세계를 뛰어넘는 극단적 인물상을 창조하고 싶다고.

그는 모든 걸 선악으로 양분하고 인간의 양면성을 도외시하면서 선인만
양산하는 것은 소설의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체험의 소산이나 틀에 박힌 진리를 넘어 문학의 힘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가능성의 세대"가 21세기 한국문학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경북 안동 태생으로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으며 이듬해 대표작 "영원한 제국"으로
베스트셀러작가 자리를 굳혔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