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명이 밀린 3번홀

잘못 뚫은 "구멍" 하나가 대회 전체를 묵사발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

그 구멍은 전 세계 내노라하는 프로들로 하여금 "생애 최다 퍼팅"을
줄줄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무대는 1987년 11월 호주의 로열 멜버른GC.대회는 내셔널 파나소닉 호주
오픈 최종 4라운드였다.

로열 멜버른은 세계 10대골프장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의 초명문 코스.

특히 그린은 워낙 빠르기도 했지만 올록 볼록한 경사가 하도 심해
프로들이 기피 코스중 하나로 첫손에 꼽는 곳이었다.

오죽하면 70년대 중반 이곳에서 플레이한 리 트레비노가 "여기서 내가
다시 플레이하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고 선언했을까.

그 날은 시속 30km 이상의 강풍이 몰아쳤다.

바람까지는 괜찮았지만 3라운드 합계 202타로 7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던 그레그 노먼은 최종라운드 1-2번홀을 마치는데 무려 1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그것은 3번홀 때문이었다.

3번홀은 거리 333야드의 이지 파4홀.그러나 3번홀 티잉그라운드에는 무려
30여명의 선수가 차례를 기다리며 밀려 있었다.

<>6퍼팅은 보통이었다

3번홀 플레이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선수들이 그린에만 올라가면 도무지 홀아웃이 안됐다.

이유는 홀컵 위치.

그날 홀컵은 오르막 경사면의 중간에 위치, 볼이 홀인되지 않으면
영낙없이 다시 굴러 내려왔다.

그린이 원체 빠른데다 경사가 심하고 바람도 세차게 부니 볼은 홀컵
근처에 머물수가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코메디였다.

볼은 홀컵 반경 4m 안쪽 거리에 결코 머물지 않았다.

5m 거리에서 오르막 퍼팅을 하면 그 볼이 홀인되지 않는한 다시 굴러
발밑으로 내려 오거나 더 굴러내려가는 양상이었다.

예를들어 마크 콜란드로라는 프로는 연속된 4개의 퍼트가 모두 5~6m
거리였다.

그는 3라운드까지 이븐파였으나 최종일 5번홀에 이미 8오버파를 치고
있었다.

불상사도 많았다.

라리 넬슨의 캐디는 볼이 멈춘지 알고 마크를 하려다가 다시 볼이
움직이는 바람에 볼을 건드려 2벌타를 먹었다.

이 홀에서 4퍼팅은 훌륭한 성취가 됐다.

보통은 5퍼팅이나 6퍼팅이었고 러셀 스완슨은 무려 8퍼팅을 했다.

급기야 선수들은 분노했다.

영국의 샌디 라일이나 로넌 래퍼티는 3번홀 플레이를 거부했다.

처음에 코메디를 즐기던 관중들도 나중에는 주최측에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주최측은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전날 부부싸움을 한 그린 키퍼의 착오인지 심술인지 모르지만 조사 결과
홀컵은 본래 예정된 곳에서 2m나 잘못 위치해 있었다.

<>노먼의 코스레코드 우승

도저히 플레이를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최측은 뭔가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옵션은 세가지였다.

"3라운드기록으로 대회를 끝내든가 아니면 최종라운드 3번홀을 빼고
71홀 플레이로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날 플레이를 취소하고 월요일에
다시 4라운드를 하던가"였다.

어떤 방안도 논란이 많았다.

결국 주최측은 선수들을 설득시켜 월요일에 4라운드를 다시 벌이기로
했다.

다음 대회 스케쥴 때문에 일부 선수들이 떠난 가운데 월요일의 4라운드
에서 그레그 노먼은 4라운드합계 11언더파 2백73타 (파71)로 우승했다.

그것은 로열 멜버른의 코스레코드를 5타나 경신한 신기록이었고
2위와는 10타차의 완승이었다.

[ 추가 ]

서양사람들은 불상사속에서도 뭔가 기념할 것을 찾는다.

그후 골프장측은 러셀의 8퍼팅을 기념, 3번홀을 "러셀 홀"로 명명했다.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