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정기인사가 속속 마무리되고 있다.

현대 삼성 LG 선경 등 대부분의 상위그룹들이 사장단인사를 끝냈으며
대우는 이번달 중순 정기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삼성 등 일부 그룹들은 내주중 임원인사를 실시할 예정이기도 하다.

올해 재계 인사는 그 어느때보다 주목을 끌었다.

경기불황국면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각 기업들은 나름의 경영전략을 "인사"에 담고 있다.

각 기업들이 어떤 전략으로 불황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지, 또 이를
계기로 재계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런지 이번 인사에서 나타난 특징을
테마별로 살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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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났다".

내주중 정기임원인사를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 모 임원은 이렇게 단언한다.

인사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꼭 1년전과 비교해봐도 상황이 돌변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의 경우 대부분의 그룹들은 축제분위기속에서 인사시즌을 맞았다.

인사규모는 물론 승진폭에서도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영실적이 좋았기 때문.

반도체는 물론 조선 유화 기계 등 대그룹의 주력업종들이 모두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 분위기는 판이하다.

반도체 경기는 급락했으며 여타 업종도 경쟁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는 당장 인사에서 드러난다.

우선 승진규모부터가 예년과 다르다.

5대그룹 중 가장 먼저 임원인사를 실시한 LG그룹에선 올해 2백48명의
임원이 승진했다.

지난해 승진자(3백36명)보다 88명, 26.2% 줄어들었다.

선경 쌍용 한화 코오롱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패턴이다.

6일 임원인사를 단행한 효성그룹 역시 승진자는 지난해의 절반선이다.

승진 임원수가 3백76명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현대그룹의 경우가 오히려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사실 지난 수년동안 각 그룹들은 경쟁적으로 "사상 최대"규모의 인사를
단행하곤 했다.

이는 곧 기업들이 꾸준히 몸집 불리기에 치중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올해 재계인사에선 이같은 "확대지향형"시스템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들의 외형팽창주의가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는 의미다.

구조적 불황은 이러한 개업인사 패턴의 변화에 결정적 촉매 역할을 했다.

더구나 지금은 사업구조를 조정하는 시기다.

신규사업을 벌이기는 커녕 영위하던 사업도 수익성이 없으면 철수하는
게 대세다.

축소지향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팽창주의의 종언은 곧 연공서열식 인사시스템과의 결별을 뜻하기도 한다.

"연공서열주의"는 확대지향형 기업구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업확대가 없다면 이같은 인사.고용시스템은 성립될 수 없다.

재계 인사에서 "업적"과 "발탁"이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현대그룹에선 전체 임원승진자의 22%가 승진연한을 채우지 않은
조기승진자였다.

LG그룹은 전체 승진자중 26명을 발탁했다.

안병욱 LG텔레콤 이사와 김건 LG유통이사는 각각 두단계를 뛰어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그룹에선 허태학 중앙개발전무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두단계를 뛰었다.

진대제 삼성전자 마이크로부문장은 부사장 승진 1년만에 다시 "대표"자를
달고 뉴코아그룹에선 30대 과장이 임원급인 점포장으로 승진했다.

종전의 인사패턴을 뛰어넘는 사례들이다.

연공서열의 파괴는 발탁과 함께 방출을 낳는다.

문제는 이것이 조직 전체적으로 플러스냐,마이너스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기업들은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해선 발탁을 않는 대신 "나가달라고" 등을 떠밀지도 않았다.

올해 인사 패턴은 이같은 흐름에 역류현상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실적과 능력위주의 인사원칙은 그 전주곡이다.

"연공서열"을 버린 기업사회의 모습은 누구도 선뜻 예측하기 힘들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훨씬 더 삭막해지리라는 점이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