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버지 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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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만한 자식이 없다"은 전래의 우리 속담이 있다.
자식이 아무리 훌륭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아버지만은 못하다는
말이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아버지가 한 가족내에서 차지한 위상이 거의 절대적
이었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동양의 고전인 "시경"의 소아편에도 전통적인 아버지의 표상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드러내주는 구절이 나온다.
"뽕나무 가래나무 초목이라도/모두가 공경함엔 뜻이 있다오/우러러
보는 분은 아버지이시고/의지할 분은 바로 어머니라오"
그래서 옛부터 아버지를 엄해야 된다는 뜻을 지닌 엄친 가엄 엄군이라고
불러왔다.
그렇다고해서 아버지가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치는데 무조건 엄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조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황희가 잘못되어가는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취한 기행에서 한국 아버지의 표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날 황희는 그의 훈계를 따르지 않고 주색에 빠진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 문밖으로 나아가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맞아 들였다.
그때 황의의 아들은 당황하여 물었다.
"아버님, 어이된 일이옵니까? 의관 속래를 하시고 저를 맞아
주시다니..."
황희는 정중히 대답했다.
"아비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내집 사람일수 있겠느냐? 한집 사람이
아닌 나그네가 찾아왔으니 이를 맞는 주인이 인사를 차리지 않으면 어찌
예의라 하겠느냐?"
한국의 아버지는 이처럼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훈육의 지혜를 지녀야 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한 가정의 존경의 대상이자 명예의 상징이 되게 된다.
그런 아버지의 상은 한국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사라져 갔다.
아버지에게는 가족의 생계와 자녀의 양육및 교육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의무만이 지워지게 되었다.
속된 말로 "돈 버는 기계"나 다름없게 전락된게 요즈음의 아버지
위상이다.
아버지모임 전국연합회가 가장에게 가정을 지킬 의무와 더불어 행복을
추구할수 있는 권리도 확보되어야 한다는 "아버지 헌장"을 제정 발표했다.
헌장 선포만으로 사회구조 변화로 초래된 아버지의 왜곡된 모습이
그 본령을 되찾게 될지 의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8일자).
자식이 아무리 훌륭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아버지만은 못하다는
말이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아버지가 한 가족내에서 차지한 위상이 거의 절대적
이었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동양의 고전인 "시경"의 소아편에도 전통적인 아버지의 표상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드러내주는 구절이 나온다.
"뽕나무 가래나무 초목이라도/모두가 공경함엔 뜻이 있다오/우러러
보는 분은 아버지이시고/의지할 분은 바로 어머니라오"
그래서 옛부터 아버지를 엄해야 된다는 뜻을 지닌 엄친 가엄 엄군이라고
불러왔다.
그렇다고해서 아버지가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치는데 무조건 엄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조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황희가 잘못되어가는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취한 기행에서 한국 아버지의 표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날 황희는 그의 훈계를 따르지 않고 주색에 빠진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 문밖으로 나아가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맞아 들였다.
그때 황의의 아들은 당황하여 물었다.
"아버님, 어이된 일이옵니까? 의관 속래를 하시고 저를 맞아
주시다니..."
황희는 정중히 대답했다.
"아비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내집 사람일수 있겠느냐? 한집 사람이
아닌 나그네가 찾아왔으니 이를 맞는 주인이 인사를 차리지 않으면 어찌
예의라 하겠느냐?"
한국의 아버지는 이처럼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훈육의 지혜를 지녀야 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한 가정의 존경의 대상이자 명예의 상징이 되게 된다.
그런 아버지의 상은 한국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사라져 갔다.
아버지에게는 가족의 생계와 자녀의 양육및 교육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의무만이 지워지게 되었다.
속된 말로 "돈 버는 기계"나 다름없게 전락된게 요즈음의 아버지
위상이다.
아버지모임 전국연합회가 가장에게 가정을 지킬 의무와 더불어 행복을
추구할수 있는 권리도 확보되어야 한다는 "아버지 헌장"을 제정 발표했다.
헌장 선포만으로 사회구조 변화로 초래된 아버지의 왜곡된 모습이
그 본령을 되찾게 될지 의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