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 인사의 또하나 특징은 각 그룹의 글로벌 경영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점이다.

간판급 최고 경영인들이 잇따라 해외 본사로 전진배치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선 특히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김광호 삼성전자부회장은 미국본사 총괄회장으로, 이필곤
삼성물산부회장은 중국 본사 총괄회장으로 각각 발령받았다.

이밖의 해외 지역본사에도 모두 중량급 인사가 파견됐다.

신세길 물산 사장은 유럽본사에, 유상부 중공업사장은 일본본사에
배치됐으며 안덕기 엔지니어링사장은 동남아 본사대표로 전보됐다.

이로써 삼성그룹의 해외본사 대표는 모두 회장과 사장급이 맡게 됐다.

심지어 경제연구소에도 국제부문 대표직을 신설해 박웅서종합화학사장을
전보했다.

물론 이에 대한 재계의 해석은 분분하다.

과연 이들이 해외본사로 전진배치된 것인지,아니면 물갈이성 인사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삼성측의 설명은 명쾌하다.

"당면한 불황의 돌파구는 해외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선
경험이 풍부한 최고 경영진이 해외본사를 총괄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

"삼성의 불황타개전략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키워드는 바로 해외부문 강화"(삼성그룹 이우희 전무.인사팀장)라는
해석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런 움직임은 비단 삼성그룹뿐만이 아니다.

현대그룹의 정기인사에서도 국제통의 발탁이 두드러졌다.

백효휘 (주)케피코사장이 대표적이다.

백사장은 현대자동차 미국현지법인장과 해외영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또 해외수주부문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고 있는 김대윤 현대건설부사장과
해외영업통인 최동호종합상사전무도 각각 승진했다.

그룹 전체적으로 해외사업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LG그룹의 경우 지난해 말 조기송 전략기획담당상무를 미국 제니스에
추가로 파견했다.

임원인사에선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이안 우즈(경영혁신추진본부
소속)를 이사로 선임했다.

모두 해외 사업 확대를 겨냥한 인사다.

진로그룹 역시 조기봉 석유개발공사 개발본부장과 리처드 그리핀
미국국무부 정책조정관을 비서실 해외사업담당 사장과 부사장으로
각각 영입해 해외부문을 강화키로 했다.

앞으로 인사가 예정돼 있는 그룹들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는 이어진다.

특히 대우그룹은 시니어급 임원들의 상당수가 전자 자동차 등의
현지법인으로 발령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전자는 중국 동남아 등지에 해외본사를 추가로 설립할 계획이며
자동차는 세계 곳곳의 생산거점을 지원하는 글로벌 디자인 체제를
내년 중 구축한다.

이같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시니어급 임원들이 해외본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대우그룹 회장
비서실)이다.

이미 지난해말 최영상 정보통신사업단장(부사장)을 대우불가리아
법인장으로 파견하는 등 고위급 임원을 대상으로 한 해외 파견은
벌써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기업들이 이같은 입장이라면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해진다.

산업공동화 논쟁까지 야기하며 지난 한해동안 재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기업들의 해외진출은 올해에도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