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버튼 재킷에 무스를 발라 넘긴 단정한 머리.

컴퓨터 앞에 앉아 글꼴을 디자인하는 심우섭연구원은 어느 사무실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도시 직장인이다.

"아직도 1년에 한두번씩은 옛날 선생님들을 찾아 뵙고 있죠"

그러나 그는 아직도 인정많은 "떠꺼머리 시골총각"이다.

그의 말에는 스승을 위해 나무를 하고 빨래를 하던 예전의 공손한 모습이
그대로 배어있다.

한밤중에 연주하곤 하는 단소가락에도 단아하고 인정많은 문하생의 정감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심연구원은 13살때까지 전북 정읍산골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사람버리는 서양학문"보다 근본을 가르치는 한학을 선호해
정규교육을 받아본 일이 없다.

그러다 공자의 출생지인 곡부의 이름을 딴 곡부강당(충남 부여)에서 서암
김희진선생에게 2년을 사사한 것을 시발로 유학의 길에 나섰다.

그의 형제들도 마찬가지.

현재 중국 연변대에서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는 큰 형님도, 산에서 불교를
연구중인 작은 형님도 그런식으로 한학을 공부했다.

미혼인 심연구원은 결혼관도 순박하고 인간적.

한마디로 "여자면 다 좋아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자신만 이해해준다면 어떤 여자도 개의치 않는다고.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심연구원은 일본기업에서도 스카우트제의가 있는
"비싼몸""이라며 조만간 인격과 능력에 감복한 안목있는 여성들의 프로포즈가
답지할 것이라고 귀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