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문화인물) 이웅진 <선우이벤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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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만남"은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또 그것처럼 어려운일도 없다.
더욱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틀에 얽매인 직장인들이라면 자기 짝을
찾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제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만남의 기회"가 너무나 제한돼있는 탓이다.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회사들이 최근들어 곳곳에서 생겨나는 것도
이래서다.
영세업체인 결혼상담소나 옛 중매문화의 현대적 발전모습이라고나 할까.
선우이벤트사의 이웅진 사장(33).
"이벤트미팅" 기획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91년 창업한 이래 지금까지 3만5천쌍의 만남을 주선했다.
3백42쌍의 부부를 탄생시킨 성과도 올렸다.
1대1의 개별미팅에서 이벤트단체미팅 "사랑의 버스" 미팅 컴퓨터통신미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한쪽 가슴이 시린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없이 쉽게 이성을
만날수 있는 편한 자리를 제공하는 게다.
1백개이상의 업체가 있다가 또 그만큼 망할정도로 부침이 심하다는
이벤트미팅업.
가끔 그늘진 곳에 있는 업체들때문에 유부남과 주부들의 탈선장소로
알려져 외부 시선이 곱지 않은 곳.
이곳에서 내로라하는 업체로 성공한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도 장인정신이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자리인 만큼
성실한 자세로 신뢰를 서로 쌓아가는 자세가 중요해요"
이씨의 사업경력은 여기서 시작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도서대여업"에 손을 댔다.
한창 잘 나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번의 실패를 경험한 뒤 다시 아이디어를 낸 분야가 바로 이벤트미팅업.
짝사랑에 괴로워했던 자신의 경험탓이기도 했지만 사회변화에 따라
남녀간 만남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창업 3년뒤인 94년부터 이씨는 광고를 내지 않는다.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으로도 충분히 신뢰를 쌓았다고
판단해서다.
그동안 별별 사건도 다 겪었다.
33번째 만남에서 결혼에 성공한 여자, 결혼문턱까지 갔다가 학력을
속인게 들통나 깨진 경우....
9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에는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세대차이이든 문화적 충격이든....
결혼문화도 그중 하나다.
"현실적 결혼관은 이미 대세죠. 요즘은 남녀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찾아요"
이런 면에서 이씨는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개인생활범위를 깨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 있도록 만남의 문화를
창조한다는 게다.
앞으로 그는 전국 체인점과 해외교포들을 위한 지점을 개설할 계획이다.
또 결혼에 대한 모든 것을 종합하는 결혼대행업체를 차리겠다는 포부도
갖고있다.
남녀의 만남도 이젠 하나의 "상품"이 됐다.
더 좋은 짝을 찾겠다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가 질주하는 시대.
이속에서 그는 "사랑의 만남"을 전한다는 꿈을 펼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
하지만 또 그것처럼 어려운일도 없다.
더욱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틀에 얽매인 직장인들이라면 자기 짝을
찾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제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만남의 기회"가 너무나 제한돼있는 탓이다.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회사들이 최근들어 곳곳에서 생겨나는 것도
이래서다.
영세업체인 결혼상담소나 옛 중매문화의 현대적 발전모습이라고나 할까.
선우이벤트사의 이웅진 사장(33).
"이벤트미팅" 기획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91년 창업한 이래 지금까지 3만5천쌍의 만남을 주선했다.
3백42쌍의 부부를 탄생시킨 성과도 올렸다.
1대1의 개별미팅에서 이벤트단체미팅 "사랑의 버스" 미팅 컴퓨터통신미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한쪽 가슴이 시린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없이 쉽게 이성을
만날수 있는 편한 자리를 제공하는 게다.
1백개이상의 업체가 있다가 또 그만큼 망할정도로 부침이 심하다는
이벤트미팅업.
가끔 그늘진 곳에 있는 업체들때문에 유부남과 주부들의 탈선장소로
알려져 외부 시선이 곱지 않은 곳.
이곳에서 내로라하는 업체로 성공한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도 장인정신이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자리인 만큼
성실한 자세로 신뢰를 서로 쌓아가는 자세가 중요해요"
이씨의 사업경력은 여기서 시작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도서대여업"에 손을 댔다.
한창 잘 나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번의 실패를 경험한 뒤 다시 아이디어를 낸 분야가 바로 이벤트미팅업.
짝사랑에 괴로워했던 자신의 경험탓이기도 했지만 사회변화에 따라
남녀간 만남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창업 3년뒤인 94년부터 이씨는 광고를 내지 않는다.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으로도 충분히 신뢰를 쌓았다고
판단해서다.
그동안 별별 사건도 다 겪었다.
33번째 만남에서 결혼에 성공한 여자, 결혼문턱까지 갔다가 학력을
속인게 들통나 깨진 경우....
9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에는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세대차이이든 문화적 충격이든....
결혼문화도 그중 하나다.
"현실적 결혼관은 이미 대세죠. 요즘은 남녀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찾아요"
이런 면에서 이씨는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개인생활범위를 깨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 있도록 만남의 문화를
창조한다는 게다.
앞으로 그는 전국 체인점과 해외교포들을 위한 지점을 개설할 계획이다.
또 결혼에 대한 모든 것을 종합하는 결혼대행업체를 차리겠다는 포부도
갖고있다.
남녀의 만남도 이젠 하나의 "상품"이 됐다.
더 좋은 짝을 찾겠다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가 질주하는 시대.
이속에서 그는 "사랑의 만남"을 전한다는 꿈을 펼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