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침 출근길.

신촌 지하철역.전철에 오른다.

정확히 말하면 휩쓸려 들어간다.

얼떨결에 나는 반대쪽 문까지 떠밀려가 있다.

저쪽 열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리에 눌려 찌그러진 코믹한 얼굴들.

짐캐리가 따로 없다.

이런, 이번엔 이쪽 문이 열린다.

있는 힘껏 배를 집어 넣어야 간신히 문이 닫힌다.

버스라고 나을것은 없다.

서울의 버스기사.

그들의 운전은 거의 경이에 가깝다.

4차선에서 1차선까지 자유자재다.

버스가 지그재그로 춤추는대로 승객들도 일제히 비틀댄다.

급정거-.

순간 나는 붕 날아오른다.

둥근 손잡이를 부여잡고 앞뒤로 흔들거리는 폼이 꼭 링에 매달린
침팬지같다.

물론 이것은 차가 시원스레 빠질때 얘기다.

러시아워의 교통체증에는 버스기사들도 대책이 없다.

승객들은 무료함을 달래느라 그저 뿌연 차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곧잘 정체를 즐기곤 한다.

"서울생활"을 관찰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안팎으로 요란하게 치장한 차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경주차량에 붙임직한 형광색 스티커, 색색의 범퍼가드, 번쩍이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알루미늄휠, 화려한 시트커버, 예쁜 크리넥스통,
창문에서 대롱대는 인형들....

뒷좌석 머리엔 꼭 공기청정기와 연신 고개를 끄덕여대는 강아지 인형이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종종 이러한 한국인들의 "자동차 치장벽"을 화제
삼는다.

평소 개인의 감성을 맘껏 표출할 공간이 부족했던 탓이라는게 내 나름의
풀이였다.

그런데 최근 한 친구가 새로운 분석을 더했다.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가 이유라는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의 운전은 목숨을 건 일이나 다름없다.

겁없는 오토바이, 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 보행자, 공포의 택시와
버스기사들....

곳곳에 사고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 저 세상으로 갈지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가능성이 지대한 이 소중한 "친구"를
장식하는데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갑자기 이웃 운전자들의 얼굴이 비장해 보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길이 뚫린다.

서울의 출근길은 고되지만 그래서 즐겁다.

* 필자는 현재 브린&구스타베슨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